수많은 마이너들을 위해
더부룩한 머리에 낡은 청바지 며칠씩 굶기도 하고~ 검은색 가죽점퍼 입고 다녀도 손엔 하이테커의 책이 있지 다들 같은 모양의 헤어스타일 유행 따라 옷을 입고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개성 없어 보여 싫지~
-봄여름가을겨울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중 10번 트랙 -'아웃사이더'- 가사 중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90년대 젊은이의 반항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요즘은 메이저와 마이너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듯이,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하면 위의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보다 래퍼 아웃사이더를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극히 소수는 강산에의 아웃사이더를 떠올리겠지만 말이다. 이 노래는 대학시절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을, 친구 1은 이승환을, 친구 2는 김민종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우리는 모두 아웃사이더였지만, 그중 단연 최고는 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학에서 형성된 정체성은 웬만하면 잘 바뀌지 않는다. 무리를 짓기보다 혼자가 편하고,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삶, 지금의 나도 많은 의미에서 아웃사이더다.
대학생활
대학생활을 회상하면 참 다양한 감정이 스멀스멀 솟아난다. 청바지에 청자켓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고 너무 찢어서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친구 녀석들은 다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완벽한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삶이 아웃사이더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웃사이더로 생활하면서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삶이 ROTC 후보생 생활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교가 되기 위한 길인 ROTC, 지극히 인사이더의 삶이 아니겠나 생각하겠지만 그곳에서 만난 41명의 동기들은 아웃사이더의 기질이 더 컸다.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결국은 깨고 반항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진 않지만, 다들 그때의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짝퉁 아웃사이더로의 삶이 나의 대학생활이었다. 철없던 1, 2학년을 거쳐 ROTC 후보생으로 보낸 3, 4학년은 정반대의 삶같이 보이지만, 그 기질은 4년 내내 삶을 관통했다.
군대생활
대학 4년을 스트레이트로 휴학 없이 졸업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대학생활이 짧게 느껴진다. 대학의 자유와 싱그러움과는 달리 군대생활은 그야말로 모든 상황을 급격히 바꿔놓은 것이었다. 민간인통제선에 위치한 부대는 군인 이외의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었고, 군대 특유의 피라미드 구조와 상명하복은 아웃사이더에겐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여자 친구도 없어 탈영을 할 일은 없었다. 군대에서도 나의 생활은 진급에 목숨을 거는 장기근무자와 달리 2년 연장된 군생활(4년 4개월)을 하면 군대생활이 끝나 다행히 아웃사이더의 특징을 뿜어내며 살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는 따르되 주된 방향성이 다른 생활방식으로 나타났다. 소대원이나 중대원을 진급을 위한 도구라 생각하는 간부들 사이에서 같이 즐기고 군 생활하는 동료로 보며 생활하니 대개 갈등은 간부들과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소대원들을 빙자하여 상급자에게 쌍욕 하기를 비롯하여 회식 때 술 취해서 상급자와 싸우기도 하고 통제하기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어느 날인가는 아침 회의에 참석하는 간부 9명 중 4명을 데리고 술 마시다 모두 지각하여 군장 돌고, 휴가를 잘린 사건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중요한 것이 내가 평생 몸담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은 사고와 행동을 자유롭게 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결정을 해야 한다. 나를 지키며 살 것이냐? 조직의 흐름에 맞춰 살 것이냐? 대부분은 그 결정 사이에서 혼란과 절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철책근무 3번째 어느 날 전역을 하며 군대생활은 막을 내렸다. 아직도 남은 것은 그때 같은 동료였던 소대원과의 만남뿐이다. 그것이 나의 군대 생활, 아웃사이더의 삶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여행
아웃사이더의 여행은 홀로 떠나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당일을 다녀오는 것이라도 여러 명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여행의 계획이 틀어져 혼자 남게 되더라도 여행을 떠난다. 겨울 제주도 일주 여행이 그랬고, 여름 일본 간사이 지방 여행이 그랬다. 앞서 전역 후 중국으로 혼자 여행이 그랬다. 여행에서 아웃사이더는 자유이며, 길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유에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큰 배낭과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 그리고 찢어진 바지와 슬리퍼. 아웃사이더의 여행 필수템이다. 여행지도 뉴욕과 도쿄, 파리와 런던보다는 동남아의 작은 섬과 밀림이 아웃사이더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의 여행 90%가 동남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직장생활
아웃사이더는 어느 직장이건 반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창의성과 융합의 의미로 좋게 포장되어 긍정적 요소로 작용되기도 하지만, 세기말에는 아웃사이더는 설 곳이 없었다.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의 성향을 그대로 표현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정규직은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ROTC 출신이었다는 것은 나의 성향을 세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연기력이 더해져 교사가 된 지가 20년이 되었다. 20년 동안 아웃사이더의 기질은 여전하다. 모범생 코스를 밟아 사립학교라는 변화 없는 분위기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것은 결단력을 필요로 할 만큼 하나하나의 선택이 신경 쓰인다. 평생 볼 사람, 같은 공간에서 8시간 이상을 보낼 사람이라는 말로 아웃사이더가 되기보다는 인사이더가 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는 곳이다. 소수에 의해 정보 독점과 결정이 이루어지고, 합리적이지 않은 많은 의사결정과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지낸다. 아웃사이더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혼자가 되면, 외로워질 직장생활 때문인지, 그것이 실제 옳다고 생각하는 건지, 무기력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웃사이더는 그런 것과 타협하지 않는다. 회의시간에 손들고 묻고 항의하기. 교장/교감에게 따지기. 행정실장에게 따지기. 잘 못된 것에 대한 반항과 자유로운 복장. 학교에서도 관리자나 부장, 정규직 교사들보다 기간제 교사들과 더 친하게 지낸다. 물론 그들도 나랑 친하다는 생각을 하는지는 항상 의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아웃사이더라 친목하지 않는 친목회도 탈퇴했다. 지금은 아직 조직에서 이용가치가 있어 부장 자리 차지하며 이런저런 변화를 이끄는 발언을 해도 관리자가 참고 있지만, 대체할 자(者)가 나타나거나 이용가치가 없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지키리라 나의 아웃사이더 정신!
인생에서
인간은 모두 외로운 동물이다.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로부터 오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메이저와 마이너,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는 인간의 역사 이래로 쭉 이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으로 인사이더로서 살아가지만, 외국여행이나 이민을 가게 되면 한순간 민족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된다. 장소에 따라 나의 위치가 급변하는 것이다.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 경제적, 교육적으로 노력하지만, 인종적/민족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차이에 대해 차별을 하지 말도록 가르치지만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아웃사이더의 삶은 선택하기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오가며 하루를 일 년을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웃사이더가 이리저리 모여 다양한 능력을 창출하는 조직을 기대하지만, 지금의 조직은 과거에 형성된 틀을 기준으로 안을 선택한 사람은 인사이더가 되고, 틀을 바꾸려는 자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그런 조직의 느낌이 강하다. 아웃사이더로 이 조직을 마감하고자 결정한 지 시간이 좀 지났다. 맘 편하게 조언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까지 도착한 것이다. 이후의 방향은 또 어떻게든 정해지겠지.
PS. 이 글을 2018년 사망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영원한 아웃사이더 전태관 님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