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하여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어떨 때는 시간이 모자라 빠른 이동이 가능한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산속을 한없이 걷기만 하기도 한다. 교통수단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전체 일정을 조율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교통수단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올레 여행처럼 여행의 전체 의미를 규정짓기도 하고, 장기간 여행하는 배낭여행객들이 현지 심야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이유에서 선택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겪어본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 그것들이 주는 다양한 의미를 비교해보면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보통, 태어나서 여행의 시작은 도보이다. 기어 다니던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방구석 구석을 돌아다니고, 밖에 나가 놀이터를 경험하고,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놀면서 도보의 범위는 넓어진다. 최초의 도보여행은 보통 친구들과 소풍을 갈 때 걷는 것에서 시작된다. 중학교 시절 주변의 숲이나 역사유적으로 소풍을 가면 전날 잠 못 들던 것과 상관없이 어쩌면 그리 일찍 일어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과 만나 버스를 타도되지만, 소풍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걸어서 간 적이 많았다. 소풍에서의 즐거운 시간도 기억에 남지만, 걸어가고 다시 집으로 걸어오면서 친구들과 보고 느꼈던 일들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이동시간도 소풍의 한 부분이었다. 마치, 헤어짐도 사랑의 일부이듯이.
남자들의 진정한 걷기 여행은 군대에서도 나타난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는 행위라고 정의될 때, 행군은 일상적인 군대생활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다. 각종 훈련으로 이동을 하며 적게는 수 km에서 수십km를 이동한다. ATT, RCT, 사단 전술기동 등등 왜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걷는다. 뙤약볕에 유격훈련을 하기 위해 걷고, 유격에서 진 다 빼고 부대 복귀를 위해 걷고, 걷기 여행 중 기억에는 또렷이 각인되어 있지만, 술 한잔 마시고 군대얘기 나오기 전에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군대에서의 걷기여행. 봄여름가을겨울 산으로 들로 진짜 많이 걸어다녔다. 인제군 구석구석과 옆 동네 양구군까지 군장을 매고 걷다보면 흘러내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기도하고, 추위에 떨면서 동상이 걸리기도 한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휴전선 경비를 서는 GOP근무의 도보여행이다. 이는 여행이라 할 수도 없는것이 매일 걷는것이 일상이라 마치 시계 톱니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매일이 반복된다. 해가 뜨는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유기적으로 시간이 조절되고 투입되어서 철수되는 기간(통상 6개월~12개월)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다.
해외여행에서 도보여행은 성지순례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도의 '올레'가 대표적인다. 둘 다 아직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배낭여행을 하면서 도보여행을 간간이 했던 기억이 난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은 도보여행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은 도보이외의 교통수단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도보여행은 태국 북부를 여행할 때였다. 굳이 돈을 주고 왜 걷냐는 사람도 많지만, 태국북부지역은 고산지역으로 다양한 트레킹 프로그램이 현지 여행상품으로 판매중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보통 현지 여행패키지를 계약할 때는 한국인 업체보다는 현지업체를 선호한다. 10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치앙마이 트레킹을 예약하고 트레킹을 출발하는 장소에 모였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인이 6명, 외국인이 4명이었다. 덕분에 언어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다양성은 좀 멀어졌다. 고산지역을 돌아다니며 대나무 뗏목도 타고 고산족인 카렌족(태국최대의 고산족) 고상가옥에서 1박을 하는 트레킹이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무리없이 참여하는 걷기라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났다. 괜히 아는척 하며 트레킹중 열매를 벨기에 여자에게 줬다가 가이드가 독이 있다고 해서 뻘쭘했던 기억이 난다. 남자친구가 째려보던 그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저녁먹으며 전통가옥에서 한 잔할 때 어설픈 영어로 사과는 했다. 히말라야 ABC(안나프루나 베이스 캠프)트레킹에 비하면 거리도 짧고 기온도 적당하여 한 번쯤 즐겨볼 만한 트레킹 코스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일상을 벗어난 걷기가 있다.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 위해 혹은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도보로 목적지 까지 걷다보면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다양한 풍경과 느낌을 갖게된다. 일상의 출퇴근 거리는 루팅이 되어 이제 기억에서 조차 남지않는다. 하지만, 도보로 이동하는 일상의 거리는 새롭게 다가온다. 친구와 모임을 마치고 혼자 밤 거리를 걷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작은 가게의 아기자기함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실루엣과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까지 삶의 희노애락을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30%가 즐긴다는 등산역시 걷기여행의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대에 일상에서 멀어져간 밖으로의 여행을 뒤로하고, 가까이 시선을 돌려보면 다양한 걷기여행이 있다. 걷기는 느리지만 밀도있는 풍경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