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음식의 추억 2(베트남)

자가격리에 대하여

by sheak

카이딘 왕궁은 후에 성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위치하여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열심히 달려 도착했다. 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일본으로 치면 교토와 같은 곳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중에도 왕릉이나 사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카이딘 왕궁에서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동남아시아 음식 중에 아직 고수에 적응을 못 해 음식을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다. 2002년 당시에는 베트남 전통 음식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거의 현지 음식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침에 주로 먹는 베트남 바게트인 '반미' 샌드위치도 안에 고수가 들어가 있어 먹다가 골라내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왕궁 주변에는 그 당시 식당이 없어 점심을 먹기 위해 후에 성 쪽으로 오토바이를 달렸다. 중간에 길을 잃었지만, 방향을 맞춰 달리니 성벽이 나왔다. 성벽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아직 잘 보존된 지역도 있었다. 우리가 본 성벽은 숙소 쪽의 여행자 거리가 아니라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행객들이 많이 다니는 '동바 시장' 반대편으로 추측되는 관광객 없는 현지인들만 다니는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콤한 돼지갈비의 향기를 느꼈다. 뒤에 타고 있던 친구 녀석도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며 오토바이를 돌리라고 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한국적인 냄새인지 나도 모르게 벌써 오토바이의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베트남은 왠지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이다. 적으로 만났지만, 베트남 전쟁에 우리나라 군인이 참여하여 전쟁을 치렀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쓴 전 대우그룹 회장이 베트남에서 활약하여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또한 우리나라의 결혼이주여성의 국적별 비중에서도 중국에 이어 2위로 2015년~2019년까지 4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음, 3위와 격차는 3배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까지 베트남 여행은 첫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가족여행, 친구와의 여행 등 총 5회를 여행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배낭여행 음식의 추억에서는 첫 배낭여행에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먹었던 음식 중 하나이다.

중국 난닝에서 국제열차를 타고 하노이에 도착하면서 베트남 여행은 시작되었고, 여전히 베트남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고, 영어도 걸음마 수준이었다. 당연히 2002년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현지 인터넷도 느린 상황이라 여행과 관련된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군대 친구 녀석과 나는 하노이부터 호찌민까지 여행자 버스를 예약하였고, 버스는 우리가 원하는 구간대로 표를 끊어서 여행할 수 있게 계획하였다. 베트남을 종주하는데, 이틀 만에 1박 2일로 내려올 수도 있고, 천천히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여러 날에 걸쳐 호찌민까지 내려올 수도 있었다. 현지 도시에서의 교통은 오토바이를 렌트하기로 하고, 장거리 여행의 경우 여행자를 모아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이런 계획으로 베트남에서부터 목적지인 태국에 이르기까지 여행지에서 오토바이를 매일 운전하게 되었다. 자전거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다 훨씬 저렴한 오토바이는 두 명이 여행할 때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이었다.

배낭여행 음식의 추억(베트남)은 베트남의 중부지역인 '후에'에서 만나게 되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베트남에서 연일 계속되는 오토바이 운전으로 저녁때가 되면 손이 떨릴 정도였다. 물론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넓은 도로도 움푹 파인 곳이 2~30%가 넘을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후에는 그 당시 카이딘 황릉 정도가 관광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그마저도 잘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입구도 없이 표를 파는 사람에게 표를 사서 관람을 하고 궁 입구에 놓인 석상에서 사진을 몇 번 찍는 게 전부였다.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다.’ 할까? 역시, 여행하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생각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카이딘 왕릉(좌), 후에성과 카이딘 왕릉의 위치(우)

카이딘 왕궁은 후에 성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져 위치하여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열심히 달려 도착했다. 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일본으로 치면 교토와 같은 곳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중에도 왕릉이나 사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카이딘 왕궁에서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동남아시아 음식 중에 아직 고수에 적응을 못 해 음식을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다. 2002년 당시에는 베트남 전통 음식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거의 현지 음식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침에 주로 먹는 베트남 바게트인 '반미' 샌드위치도 안에 고수가 들어가 있어 먹다가 골라내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왕궁 주변에는 그 당시 식당이 없어 점심을 먹기 위해 후에 성 쪽으로 오토바이를 달렸다. 중간에 길을 잃었지만, 방향을 맞춰 달리니 성벽이 나왔다. 성벽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아직 잘 보존된 지역도 있었다. 우리가 본 성벽은 숙소 쪽의 여행자 거리가 아니라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행객들이 많이 다니는 '동바 시장' 반대편으로 추측되는 관광객 없는 현지인들만 다니는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콤한 돼지갈비의 향기를 느꼈다. 뒤에 타고 있던 친구 녀석도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며 오토바이를 돌리라고 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한국적인 냄새인지 나도 모르게 벌써 오토바이의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냄새를 쫓아 도착한 곳은 성벽을 등지고 난전처럼 작은 목욕탕 의자 같은 것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는 노점상 같은 곳이었다. 현지인들 사이에 끼여서 우리 둘은 자리를 잡았다. 아저씨는 돼지를 굽고 아주머니는 월남쌈을 싸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돼지고기를 넣은 쌀국수 2개와 월남쌈 2개를 시켰다. 그 당시엔 디지털카메라도 없었고, 음식에 영혼이 팔려있는 상태여서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다.

돼지불고기를 넣은 쌀국수(좌), 월남쌈=스프링 롤(우)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은 위의 사진 같은 음식이었지만,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노점 식당이라 사진보다는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그 맛은 잊지 못한다. 그렇게 돼지고기 쌀국수 두 개와 월남쌈 2개를 시켰는데 월남쌈 3개씩 두 세트가 나왔다. 월남쌈이 1인분에 3개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서 숨넘어가듯 한 끼를 해결했다. 해외여행에서 현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완벽한 풍경 속에 맛있는 음식이 함께 있는 경험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 성벽을 뒤로한 노점 식당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한국의 돼지갈비 냄새에 이끌려 찾은 만족스러운 한 끼! 그렇게 말없이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지불한 돈은 한국 돈으로 2,000원이 조금 넘었다. 여행자 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에 베트남 여행에서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 이날 이후로 베트남을 4번 더 방문하였지만, 5번째 베트남 방문 전까지 나를 사로잡을 만한 음식을 만나지 못했다.

다음에 후에를 방문하면 남아있는 성벽 주변을 어슬렁 거릴 거 같다. 그날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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