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에 대하여
배낭여행은 '누구와 떠나는가?' 혹은 '누가 계획하는가?'에 따라 여행 전체의 느낌이 결정될 만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나의 여행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실행으로 옮겨졌다. 겨울 제주도 라이딩 여행도 5명이서 계획하다 결국은 혼자 떠나 제주도 일주를 마무리했고, 일본 간사이 지역 여행도 4명이 계획을 세우다 결국은 혼자 떠나게 되었다. 2019년 가깝게 지내는 가장 나이 많은 친구(나보다 9살이 많은)가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전부터 농담 삼아 퇴직기념 여행을 한 번 가야 되지 않냐고 말을 던졌는데, 퇴직금도 좀 있고 자신이 여행비용의 2/3를 낸다고 하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멤버를 모집하고 머릿속으로는 벌써 기본 틀이 다 잡혀 있었고,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여행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전문가 뺨치는 친구가 있어 그를 가이드로 채용(여행비용만 보전, 실제 가이드 비용 지불은 없었음)하기로 하고 모든 여행의 일정과 루트를 맡겼다. 그리하여 시작된 일본 규슈 여행은 2019.1월 시작되었다. 여행을 주도하지 않고 맘 편히 따라나서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음식이 아닌 술에 반하다 - 하카타의 맛집들
대구에서 남자 4명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출발한다. 물론 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 옷가지와 필요한 물건 몇 개만 챙기고 떠난 첫 여행이었다. 가벼운 배낭만큼 맘의 부담도 없었다. 그저 따라나설 뿐.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유창한 일본어의 소유자 친구가 사전 예약한 차를 렌트하고 차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섰다. 비즈니스호텔에 짐을 풀고 이제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난 어디로 가는지, 뭘 할지, 뭘 먹을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는 여행도 나름 재미있었다. 일단 뇌의 대부분을 주변의 풍경 인식에 투자하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치 혼자 여행을 온 것처럼 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친구 녀석은 첫날의 기억을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워 놓았다. 간략한 일정은 후쿠오카 중심지인 하카타의 무제한 술집을 거쳐 포장마차에서 사케 한잔,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서 편의점 안주에 맥주 한잔. 일단 후쿠오카 시내에 유명한 무제한 술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은퇴하는 나이 많은 친구를 위한 것이다. 더불어 그 술집은 가게 내에서 흡연도 가능하니 은퇴하는 친구에겐 최고의 장소였다. 물론 나에게도...
짐을 풀고 우리는 걸어서 하카타 역으로 향했다. 풍경을 감상하며 하카타 중심지를 거쳐 약간 벗어난 곳에 다다를 무렵 전통적인 분위기의 건물이 나타났다. 친구 녀석 말로는 2시간 동안 음식은 주문한 대로, 술은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고 안내해 줬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씩 마시며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가게 안에서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에 대해 들떠 있는 마음을 다양한 술로 풀어냈다. 문제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 녀석이 시켜놓기만 하고 마시지 않은 일본 소주나 사케를 내가 마시는 바람에 정량을 초과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생맥주와 사케, 하이볼과 고구마소주를 마시며 밤이 깊어갈 때쯤, 우리는 1차 장소를 나와 걸어서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다.
걸어가는 동안 포장마차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서서 혹은 의자에 앉아 간단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하천 다리를 건널 때 보기 좋은 포장마차가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지에서는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 친구 녀석의 여행 방식이 나와 잘 맞아떨어졌다. 포장마차에서 친구 녀석이 사케 한잔씩을 주문했고 안주는 들뜬 여행에 대한 마음으로 대신했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좀 더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이었고, 안주도 그곳에서 다 조리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때까지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셨지만, 기억에 새겨질 만큼의 음식은 만나지 못했다. 포장마차를 나와서 숙소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더 사서 복귀를 했다. 따뜻한 숙소에 들어오니 취기가 올랐고, 몸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맥주는 한 캔으로 만족했다. 몸이 좀 안 좋음을 느끼고 잠자리에 들었다.
배낭여행 추억의 음식을 만나다.
아침 일찍 일어났으나, 어제의 과음으로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생선구이가 나왔는데 먹지 못했다. 일정을 위해 아침을 억지로라도 먹었고 숙소로 들어와 짐을 쌌다. 후쿠오카를 떠나 서쪽으로 갔다 벳부로 이동하면서 예약해 놓은 아사히 맥주공장을 들렀다. 여기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최고의 음식을 만나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생맥주였다.
맥주공장에 들르기 전까지 차 안에서 골골대며 힘든 일정이 되리라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오전만 좀 쉬면 하루가 멀쩡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사히 맥주공장 견학 말미에 생맥주를 체험할 수 있는 쿠폰을 통해 3잔을 마실 수 있다고 친구가 얘기했지만, 맛만 보고 안 마시기로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테이블에 앉아 각자 한 잔씩 생맥주를 받아서 왔다. 다들 어제의 전작이 있어서 잘 마시지 못했다. 나도 마지못해 한 잔을 들이켰는데, 어제의 숙취가 있었음에도 그 맛에 반해 한 잔을 다 마셨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할당량인 세잔을 모두 비우고 친구의 할당량까지 4잔을 마시고 박물관을 나왔다.
몸이 안 좋으면 휴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고 여행을 이어가고, 속이 안 좋으면 식사를 몇 번 거르면서 회복하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숙취도 마찬가지다. 안 좋은 속은 긴 시간 술을 만나지 못하게 하여 회복한 다음 술을 마셔야 술맛도 좋고 여행도 이어갈 수 있다. 그 날 아사히 맥주공장에서 마신 맥주로 인해 그날은 하루 종일 힘든 몸을 이끌고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날 아사히 맥주 시음을 후회하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친구의 은퇴 여행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그것이었으며,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숙취의 아침에 만났던 그 생맥주를 꼽는다. 보통 음식이 메인이고 술은 음식을 거드는 역할을 하기 마련인데,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다 보니 음식보다 메인이 되기도 하는 비중이 높다. 내가 다시 후쿠오카를 찾는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은 후쿠오카 타워도 박물관도, 주변 유명 관광지인 다이자후 텐마구도 아니다. 후쿠오카를 방문한다면 내 배낭여행의 추억을 선사한 '아사히 맥주 하카타 공장'을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