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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an 24. 2024

인각사 눈길

여행은 사치 같아

#.

닿다.

걷다.

두리번거리다.


낯선 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는 집을 대신할 숙소를 향해서 혹은 여정에 따르는 허기를 달랠 만한 식당을 찾아 걷는다.


오감을 통해 들오는 여행지의 색다름, 그것들은 신선하다면 신선하고 잡다하다면 잡다하지만 모든 지각이 수런거림을 멈추고 문득 나는 언젠가 이미 와 봤던 듯한 기시감에 빠져든다.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오밀조밀한 낡은 골목길이나 황량하게 펼쳐진 교외 신도시거나 잘 가꿔진 도심의 공원, 나름 다른 이름으로 자신만의 지역 풍토 위에 진행 중인 역사, 나는 그 역사의 단면을 스치고 있는 것이다. 찰나일지라도.


찰나의 행인!ㅡ 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오늘 저녁 나는 이 세상 어느 낯선 도시에 떨어져도 이튿날 문득  중얼거릴 것이다.


"나는 꼭 이 도시를 언젠가 걷고 또 걸었던 듯해."


이와는 달리, 내 기억 속의 유일한 풍경으로 기억되는 시골길이 있다.  군위 인각사와  그 앞길. 눈길이었다.


인각사 너른 마당이 눈으로 하얬다. 삼국유사연구소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전각은 문이 닫힌 채였고, 나는 거기 마루에 앉아보았다.


다시 대구로 가야해서 버스를 타기 위해 좀 더 큰 길까지 내처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가 틀어 준 영어노래, 평화는 음률 속에 빛나고 있었다.


건너편 더할 수 없이 한적한 농촌 마을.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시골 버스.

정류장 벤치에 말없이 앉아있는 모자母子. 풍경은 고요한데 그날의 햇살이 여태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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