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할아버지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会图(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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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아픈 날 외출은 정말 힘들다.
몇 발 짝 못 가서 배가 또 싸르르 해지면 정말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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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할아버지는 남지 모임에 빠지려고 했다.
배탈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다.
아침녘에 홍사효가 연꽃이 피었으니 오라는 쪽지를 보내왔는데 못 간다 전하라고 했다.
연꽃 구경은 6월이 제철.
거기다 남지가 잘 보이는 홍사효 집에서 띄운 전갈이고 보니,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구나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여든 나이에 배탈이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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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늦게나마 참석하였다.
모일 사람 다 모이고 나만 빠졌노라고, 속히 오라는 전갈이 또 한 번.
이렇게나 부르는데 안 가는 것도 고집 같아 일어섰다.
아들이 모시겠다고 나섰다.
육십 후반이면 퇴직관료가 되어 이런 노인네 모임에 아들 하나쯤 효도 삼아 따라나서주는 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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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길 잘했다.
초여름 햇살 아래 연꽃이 벙긋벙긋 피어 있고 아는 얼굴들이 모두 평안하니 마음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ㅡ 우리 이렇게 다 모이기도 어려우니 화공을 부릅시다.
ㅡ 오늘 모임을 그려서 자손에게 물려주면 자손들이 우리 할아버지가 늘그막에 평안하셨구나 생각하며 뿌듯할 거 아니오?
ㅡ 그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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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잘 그렸네 그려.
화공이 그린 그림을 돌려보았다.
오늘은 한 장이지만 며칠 뒤면 똑같은 그림으로 12집 각각 전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아버님 배 아픈 건 어떠시냐 물어왔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
"벗을 만나 연꽃을 보노라니 배 아픈 것도 다 나았다."고 대답해줬다.
*"남지": 숭례문(남대문 ) 앞에 있던 연못.
*참조:윤진영 연구원의 <그림이야기>, 화광신문 제14면. 202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