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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득.
문을 엶과 동시에 날개 그림자.
두 마리의 비둘기였다.
에개개, 너희였어?
솔직이 비둘기여서 실망했다.
적어도 까마귀쯤이면 만족했을지 모른다.
까마귀 말고도 참새라던지
가끔 씁씁이라고 우는 소리를 내는 이름 모를 새라든지... 다 환영이다.
하지만 비둘기는...
내 허용의 범주에서 완전 벗어난 종이다.
산비둘기일 거야.
굳이 뒷산을 끌어들여 흔한 광장의 비둘기가 아니라고 상상하기로 한다.
실망이 너무 커서 나 자신을 달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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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당에 보리알을 뿌리지 않은 지 며칠째.
처음엔 눈이 내려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눈도 비도 없는 마른 마당이다.
이제 해도 좀 따뜻하고 봄이 오고 있는데... 어디서든 모이를 찾겠지.
겨울숲 우거진 등허리에 봄바람을 들이고 있는 뒷산 너머 하늘을 보며 중얼인다.
나름 알맞은 핑계 같지만, 본심은 내 맘에 전혀 신비할 것 없는 비둘기들을 보리알을 뿌려가며 불러 모을 일인가, 하는 의문에 머무른 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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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우리한테 실망한 모양이야.
ㅡ 도대체 왜?
ㅡ 그야 나도 모르지. 눈빛이 그랬어.
ㅡ 아직 말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어째서 실망했을까?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에게 와닿은, 여자의 실망 가득한 눈초리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중이다. 도무지 모를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