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못 쓰는 이유를 시간부족이라 생각했다. 학교 출퇴근을 그만두면 뭔가를 이룰 것 같았다. 그것이 착각임을 오만임을 지난겨울에 알았다. 2022년에 초등학교를 퇴임하고 지난 몇 달간은 나름대로 글이 써지기는 했다. 그러던 중 한두 달 전부터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쓰기 위해서 퇴임을 한 것은 아니다. 퇴임을 한 이유는 여럿이지만 한 가지를 꼽는다면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내 교직생활은 35년간 지속되었다. 간혹 병가는 있었지만 휴직 한 번 하지 않고 계속된 교사생활이었다. 내 몸과 정신이 더 늙기 전에 건강한 심신으로 삶을 살고자 하여 교단에서 내려왔다.
여행을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고, 운동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배우고 싶은 악기도 없고, 봉사활동을 할 여력도 없었다. 퇴임하고 한 일은 집안 살림에 집중하고 책 읽고 브런치에 글 몇 편 올리고가 전부였다.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두 의미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지속되는 무료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 지루함은 뇌를 늙게 만든다는데, 뭔가 일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무엇으로 일상의 의미를 찾을 것인지 궁리 중이었다.
그러던 중, 퇴임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교감 선생님이었다. 2학년 담임 선생님 한 명이 휴직을 하였는데, 기간제 교사로 와 달라고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이었는지. 나는 바로 그러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한 한기 동안 학급 담임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1년이 아니라서 부담도 적었다.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잘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우리를 불러줄 때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친구에게 파이팅을 받고 나니 힘이 생겼다. 2학년 담임 5개 반 중에 두 명은 동료로 일했던 낯익은 사람이었다. 낯익은 학교 시설, 낯익은 사람들, 마음이 편했다.
지난달에 2학년 담임 배정을 받고 아이들을 만날 교실로 들어가 보았다. 고맙게도 교실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했다. 텅 빈 교실을 지켜오던 약간의 먼지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물휴지로 창틀과 아이들 책상 위와 의자를 닦았다. 사물함 번호표를 정비하고, 환경 물품비를 받아다가 교실 게시판을 꾸몄다. 아이들의 작품을 게시할 공간을 바라보며 기대를 해본다. 2월 말에 교실 정비를 다 마치고, 3월 2일 산뜻하게 아이들을 맞이하고자 내 딴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3월 2일 첫날 맞이한 25명의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온전하게 볼 수는 없었다. 가을 산행에서 보았던 머루알 같은, 까만 눈동자가 더 돋보였다. 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내 소개를 하면서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여러분, 선생님 얼굴 궁금하지요? 잠시 내릴게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 와, 예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학교에 오니, 내 얼굴을 보고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순수하니까 진심일 거라 믿기로 했다. 하하.
한 학생이 오지 않았다. 첫날이니 교실을 잘못 찾아간 아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기로 하였다.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그 학생이 체험학습 중이라고 한다. 아니, 어떤 사정이길래 새 학년 첫날 등교를 하지 않고 가족여행 중인지 의아했다. 너무한다 싶다. 국외도 아니고, 바다 건너 제주도도 아니고, 뱃길도 비행기길도 아닌데, 첫날 등교를 안 하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너그러워지자. 너른 마음을 갖자. 내 마음을 다독였다. 서두르지 말자.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