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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운다는 것

by 강지영

오늘 새벽 5시도 안 되어서 눈이 떠졌다. 나이를 먹으니 확실히 잠이 줄어들기는 했다. 게다가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했으니 새벽에 정신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게다. 그런데 쉽게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어제 읽다만 책을 읽을까. 아니면 음식을 만들까. 잠시 고민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책을 읽고 싶었다. 새벽 독서가 얼마나 달콤하던가. 세상 참 고요한 속에서 책장 넘기는 샤라락 소리는 얼마나 경쾌한가 말이다.


그러나 딸아이가 점심에 집에 와서 먹을 식사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음식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딸아이 직장이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늘 집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 이불속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다.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돼지고기 앞다리살 한 팩, 닭안심살 한 팩, 그리고 청경채와 양상추. 그렇다면, 하고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우선 닭안심에 맛술, 생강즙, 소금 약간을 넣어 버무린 후, 20분 정도 재운다. 닭안심에 전분 가루를 묻혀서 노릇노릇 구워낸다. 이것은 양상추와 청경채와 같이 먹는 샐러드용이다. 돼지고기 앞다리살과 양파를 냄비에 넣는다. 먹다 남은 배추김치 모아 둔 것을 넣는다. 물을 넣고 20분 정도 푹 끓인 후, 두부와 송송 썬 대파를 넣어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딸아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찜기에 올린다. 이렇게 하고 나니, 7시가 다 되었다. 아, 그리고 멸치볶음도 했다. 어제 잡채를 하고 남은 피망을 아주 잘게 썰어서 멸치볶음에 넣었더니 식감이 아주 좋다. 아침 식사는 삶은 달걀, 사과, 그리고 닭안심 샐러드다.


점심에 집에 와서 맛있게 먹을 딸아이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뿌듯하다. 이렇게 음식 준비를 잘해놓고 출근을 하면 하루가 유쾌하다. 옛 어른들이 말하길, 논에 물들어 가는 것 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하였다.


올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이라고 하였지만,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나오니, 그냥 견딜만했다. 학교에 도착하였다. 교실이 조용하다. 우리 반 교실과 옆반 교실의 온풍기를 틀었다. 8시 30분 정도가 되니, 학생들이 오기 시작한다. 한 학생이 8시 55분에 들어온다. (우리 학교 등교시간은 8시 40분이다.)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온다. 머리는 까치집 마냥 들떠 있고, 입술은 말라 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왔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그냥 학교를 보낸 거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그런다. 다른 학생에게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물어보니, 식구들 모두 늦잠을 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왔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바쁘면 너라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애먼 아이에게 화를 냈다. 이렇게 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1교시부터 배가 고프다고 짜증을 내거나 싸운다. 공부에 집중할 턱이 없다. 30대, 40대 젊은 엄마 아빠니까 잠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굶겨서 학교에 보내는 게 말이 되는가.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지 않으면 뇌가 깨어나지 않는다. 주인이 아직도 자고 있다고 착각하여 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학습도 안 되는 거다. 이제는 엄마 아빠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챙겨 먹는 것도 가르쳐야 할 판이다.


우리 학교는 8시 40분부터 9시까지 아침 독서시간이다. 먹는 음식이 몸을 이루고, 읽는 책이 정신을 형성한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해야 공부도 잘되고 인성도 바르게 자란다.


카프레제.jpg 카프레제도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메뉴다. 다음 아침에는 이걸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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