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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와 강자, 당신은 누구 편?

by 강지영

(사진출처:픽사베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주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터진다. 부딪치고 다치고 싸우고 아프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이나 복도 또는 화장실에서 생긴다. 점심시간에는 주로 운동장에서 발생한다. 급식을 끝내고 운동장에 모여든 아이들이다. 모두 교사의 '사각지대'이다. 그들의 질주 본능은 실내와 실외를 가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초원이 연상된다. 초원을 누비는 맹수들 말이다. 위험 천만한 일이다. 뛰는 게, 네 발 달린 동물의 본성인가도 싶다. 하여 나는 쉬는 시간이 되면,

"쉬는 시간은 뛰어노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입니다.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물 마시는 시간입니다."

하는 당부의 말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얌전이들을 위해 나는 동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주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 또는 <동물의 왕국>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동물의 왕국>이다.


사자가 얼룩말과 영양을 사냥하는 장면이다. 얼룩말 쪽에서 사자가 있는 쪽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사자가 얼룩말 냄새를 맡았다. 사자가 고개를 돌려 보니 얼룩말이 떼 지어 걷고 있다. 사자가 어슬렁어슬렁 가까이 간다. 여학생은

"야, 얼른 도망가. 사자가 오고 있어!"

남학생은,

"야, 얼른 달려가야 잡지. 왜 걸어가냐?"

자연스레 편이 정해졌다. 얼룩말은 여자 편, 사자는 남자 편. 사자의 눈빛이 변했다. 잠시 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이제는 얼룩말 쪽으로 바람이 분다는 해설이 들린다. 얼룩말이 사자의 냄새를 맡게 된 것이다. 얼룩말 떼가 사자의 냄새를 맡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사자의 사냥 실패다. 여학생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음 장면, 수컷 영양 두 마리가 뿔싸움을 하고 있다. 사자가 오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이를 포착한 사자의 눈빛이 빛난다. 살기가 가득하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남학생은 사자 편이다. 어서 달려가서 영양을 잡아먹으라고 응원을 보낸다. 여학생은 사자가 니들을 노리고 있으니 뿔싸움은 그만하고 어서 도망가라고 애타게 바라고 있다. 곧바로 영양은 사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총력을 다해 도망간다. 이번에도 사자의 사냥 실패다. 여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때로는 손뼉을 치는 여학생도 여럿이다.


여자 아이들은 약자의 편이고, 남자 아이들은 강자의 편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레 편이 나뉘는지 모르겠다.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존 그레이의 말대로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으니' 본성도 다르겠지. 서로 다른 별에서 왔으니 생각도 욕구도 다를 터이다. 나? 나는 얼룩말과 영양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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