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국어 교과서 한 권이 끝났습니다."
"와아, 끝이다!"
교과서가 끝났다는 말에 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린다. 초등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는 '가'와 '나' 두 권으로 나뉘어 제본되어 있다. 학생들의 책가방 무게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교육부의 배려일 것이다.
"그러나, '나'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우~"
나는 아이들의 탄성에 찬물을 끼얹고 학생들의 탄성은 탄식으로 바뀐다. 기왕에 찬물을 끼얹을 거, 차디찬 얼음물을 쏟아붓는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2학년 '나'책이 끝났다고 다 끝나나요? 3학년 국어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끝인가요? 중학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학교 졸업하면 끝인가요? 고등학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가 끝인가요? 대학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학교가 끝인가요? 취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움의 연속입니다. 배우는 일은 쉼이 없습니다."
"아휴, 끝이 없네!"
"나는 할머니가 젤 부러워!"
"할머니?"
"나도!"
"나두!"
뜻밖의 말에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더니, 한 학생이 또렷하게 말한다.
"할머니는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직장도 안 다녀도 되잖아요? 그래서 젤 부러워요."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엄마를 부러워했다. 어떤 아이는 엄마를 그리라고 했더니, 엄마가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걸 그리고 있다. 세상에서 '놀고먹는' 엄마가 제일 부럽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게 할머니로 바뀌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초등 엄마들은 출산과 영유아 육아를 끝내면 다시 직장에 나가거나 문화센터나 피트니스 등에 다니거나 수영, 골프 등을 배우느라 집에 있는 이가 드문 듯하다.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젊은 엄마는 거의 없는 듯하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보며 느꼈던 때가 떠오른다. 나의 부모님은 농부였다. 봄이면 씨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여름이면 잡초를 뽑고, 논에 물을 대고, 채소를 가꾼다. 가을이면 추수하느라 바쁘고, 겨울이나 되어야 일손을 쉴 수 있다. 물론 겨울에도 땔감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지만, 뙤약볕에서 일을 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농사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는 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농사지을 땅이 넉넉하지 않아 가정 경제는 어려웠다. 공부하기가 힘들어서 부모님이 부러울 때는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께 힘이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밤이 되어 곤히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면 졸음은 달아났고, 향학열은 높아져 책상 앞으로 갔다. 나와 같이 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이 가난했으므로. 빈부의 격차를 모르고 자란 만큼 경제적인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도시에서는 안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던 시골 농촌은 거의 모두가 가난했다. 시골에서는 최소한 '반지하방'은 없었다. 다 같이 평평한 땅 위에서 '평등하게' 가난했다는 얘기다.
초등 저학년 가을날, 친구들과 함께 빈병을 하나씩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논둑에는 메뚜기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빈병에 메뚜기를 잡아넣었다. 집에 가지고 오면 엄마가 가마솥에 메뚜기를 넣고 볶아 주었다. 어느 때는 잠자리를 잡아다가 날개를 떼고 마당에 뿌려주면 닭들이 달려들어 콕콕 단숨에 먹어치우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서 가을날을 보내기도 했다. 추수가 끝나면 빈 논에 가서 이삭 줍기도 하였다. 이삭을 학교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가져온 벼를 걷어서 판다고 하였다. 팔아서 번 돈으로 '조개탄'을 산다고 하였다. 그 당시, 겨울철 교실 난방에 필요한 연료가 조개탄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왜 그렇게 공부를 힘들어할까. 예전에 비하면 교실에서 하는 공부는 다양하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재미있어한다. 국어 수학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놀이와 만들기, 그리기 등을 하는데 그걸 아주 좋아한다. 학습 준비물도 거의 무료로 제공한다. 학교가 서비스업이라는 말에 큰 거부감이 없다. 즐겁게 공부하고 안전하게 귀가하면 내 책무는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방과 후에도 아이들의 배움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학원에 가야 한다. 늘품꿈터나 돌봄 교실에 가기도 한다. 거기서도 기획된 프로그램에 따라야 한다. 돌봄 교실에 가는 아이들은 4시, 5시까지 학교에 머물러 있다.
얼마전 할 일이 있어 퇴근이 늦은 때가 있었다. 교실에서 나오니, 컴컴한 복도가 무서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로 손전등을 켰다. 그런데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유치원 교실은 불이 켜져 있다. 병설 유치원 선생님의 퇴근은 7시라고 한다. 부모님이 퇴근하여 자녀를 데리러 올 때까지 유치원생이 선생님과 함께 7시까지 유치원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을까.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가정 육아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머니댁에서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방과 후 수업에 다니는 아이들, 돌봄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삶도 학부모의 삶도 다 존중되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적응해야 하는 수고가 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