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픽사베이)
수학 곱셈 문제를 풀었다. 구구단을 다 외웠다고 자랑하느라 일부러 소리 내면서 문제를 푸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옆에 앉은 짝은 골똘히 듣고 있다가 답을 쓰기도 한다. 참 눈치 빠른 아이다. 한마디로 공중에 떠도는 답을 줍는 아이다.
쉬는 시간에 채점을 하는데, 한 학생이 답을 다 맞혔다. 평소에 수업태도도 안 좋고, 장난꾸러기인 데다가 산만한 아이였다. 하루 사이에 일취월장하여 100점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러서 조용히 물어보니, 부정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두세 번 물어봐도 자기 힘으로 했다고 한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새 평가지를 주며 내 앞에서 다시 풀어보라고 했다. 단순한 문제는 푸는데, 문장으로 된 '문장제 문제'를 풀지 못한다. 문해력이 없는 거다. 네 번째 물어봤다. 솔직히 말하라고. 아까는 다 맞히더니, 지금은 왜 못 푸냐고 했더니, 고개를 숙이며 짝의 평가지를 보고 했다고 실토한다.
금방 들통이 날 일인데도 끝까지 자기가 했다고 우기는 배짱은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단순함'이 안타깝다. 안쓰럽기도 했지만, 잘못을 나무랐다. 남이 풀어놓은 답을 보고 쓴 것도 나쁘고, 선생님께 거짓말한 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눈물방울을 떨어트린다.
자리로 보내 놓고 다음 수업 시간에 보니, 고개를 떨구고 있다. 색칠하기나 말하기 등의 공부를 해도 좀처럼 표정을 밝게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시들어 버린 화초 같다고나 할까.
국어 시간이 되었다. '사랑이 뭘까?'라는 글이 나왔다. 아마도 그림책인 모양인데, 나는 이 단행본을 읽은 적은 없다. 사랑에 관한 다양한 얘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랑에는 주는 사랑, 받는 사랑이 있다는 것.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주는 그림이 나온다. 엄마가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그림도 나온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했다. 퍼뜩 떠오른 활동 한 가지.
"사랑이란, ( )"
사랑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채워보라고 했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가 보다. 순간, 묘책이 떠올랐다. 수학 시간에 거짓말했다고 혼난 학생을 불렀다.
"oo아, 어제 다친 손가락은 괜찮아?"
하면서 손가락을 만졌다. 그랬더니, 조금 아프지만 어제보다는 덜 아프다고 한다. 다행이다.
"얘들아, 지금 봤지? 내가 왜 oo이의 손가락을 만졌을까?"
"사랑하니까요."
"맞아, 그러면 어떻게 문장을 만들면 될까?"
"사랑이란, 만지는 것? 히히!" (다 함께 웃음)
"으음, 그것도 되지만, 사랑이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
라고 말하며 칠판에 적어 주니, 아이들이 "오호!" 탄성을 지른다. 바로 '감'이 온 듯 써내려 간다. oo이의 표정을 보니, 밝게 웃는 표정이다. 물 맞은 화초처럼 생기가 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 마음을 알아주니 말이다.
다음은 학생들이 쓴 사랑에 관한 초2 학생들의 문장이다. 칠판에 게시하였다. 몇 가지 옮겨본다.
-사랑이란, 아낌없이 챙겨주는 것.
-사랑이란, 좋아하는 것.
-사랑이란, 힘들 때 도와주는 것.
-사랑이란,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것.
-사랑이란, 초콜릿을 먹는 것.
-사랑이란, 아나주는 것.(맞춤법 틀림. 안아주는 것이겠죠?)
-사랑이란, 치매 걸리면 챙겨주는 것.
-사랑이란, 배가 고픈지 물어보는 것.
이 문장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때는 정말 선생 하길 잘한 것 같다. 이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건, '사랑이란, 배가 고픈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배 고프지?"
"네."
"선생님이 왜 물어봤을까?"
"사랑하니까."
"그래, 밥 먹자."(다 같이 또 웃음)
근데, '사랑이란, 치매 걸리면 챙겨주는 것'이라고 쓴 문장이 궁금하다. 혹시 주변에 치매 걸린 분이 있으신지, 내일 물어봐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