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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Feb 19. 2024

노년을 대비하는 마인드셋

마음먹기 나름의 법칙

해가 바뀌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와! 벌써 내 나이가 00이네." 하는 말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는가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가 점점 커진다는 것, 어린 사람일수록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기대와 모험심이,  나이 든 사람일수록 자신의 아름답고 젊은 때가 지나가고 있다는 아쉬움과 쓸쓸함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노화',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보편적이다. 나이 들면 불편해질 자기 모습이 퍼뜩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나이 들수록 몸과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까 봐, 빠른 사회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소외될까 봐, 공식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까 봐, 현저히 수입이 감소되고 경제적 곤란을 당하게 될까 봐, 하나 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고리감과 외로움이 짙어질까 봐 노년을 상상만 해도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년의 삶과 노화 과정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더 나아가서 맘 편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우선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가져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년이란 하늘 높이 튀어 오르는 공처럼 활기 넘치던 삶이 갑자기 수직하강하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상태가 아니다.  어느 시기에나 살아있는 한 오르락내리락하며 찾아오는 크고 작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노년의 삶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노년에 찾아오는 환경적,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적응하면서 삶을 잘 마무리하는 과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노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축적된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시기다. 성장을 멈추지 않겠노라 노력하고 깨어 있는 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정신이 육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  가운데 노화와 인간의 한계, 고정관념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격적 결과를 제시했던 연구가 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던 엘렌 랭어(Ellen Langer)가  1979년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서 70~80대 노인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혁신적인 심리 실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다. 이 연구의 가설은 단순하다. 마음을 20년 전으로 되돌려 놓으면 그 변화가 몸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노인들은 지금 나이보다 20년 더  젊은 나이였던 1959년을 살고 있는 양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1959년 당시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을 요구받았다. 1959년의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노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실험 초기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었던 의존적인 그들의 행동과 태도가 독립적으로 변화되면서 실제로 신체 능력과 기능이 향상되었고, 연구 말미에는 외모도 훨씬 젊어 보였다. 연구 결과, 인간을 가두는 것은 신체적 자아가 아니라 신체적 한계를 믿는 우리의 고정관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엘렌 랭어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는 단지 육체가 젊어지는 것뿐 아니라 행복과 건강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의학이나 민간요법뿐 아니라 놀랍게도 마음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인생의 시계를 빠르게 앞으로 돌려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더 늙고, 힘없고, 의존적 삶의 태도를 가질 때 그만큼 신체의 모든 기능도 빨리 노화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는 건강에 관하여 스스로 두는 한계를 거부하고, 건강 문제에 좀 더 의식을 집중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의식을 집중하여 건강을 대하라고 해서 올바르게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의학적인 조언을 따라야 한다거나, 반대로 그러한 부분을 무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위축시키는 사고방식이나 건강과 행복에 대해 우리가 설정해 둔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수호자가 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자는 것이다. 엘렌 랭어. <마음의 시계>. 24-25.


시간을 거꾸로 돌리기 


한국 전쟁을 경험한 부모님 세대는 꿈을 꾸며 살기보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살기 바빠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이전 세대보다 수명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것도, 노쇠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것도, 노년의 안정된 삶을 위한 경제적 대비도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평생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살았을 뿐,  인생을 즐길 새도,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만끽할 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노년의 시간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가혹하게 다가왔을까! 


아버지는 생전에 80대 초반까지만 해도 뜨문뜨문 사회활동을 했고, 자가운전으로 언제든 자유로운 외출을 할 뿐 아니라 마음먹으면 짧은 여행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이셨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야트막한 동네 산에 오르고, 함께 사우나를 하고 찻집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그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마침내 가장 친한 친구마저 세상에서 사라지자 아버지의 시간도 갑자기 정지되었다. 더 이상 외출도, 외모를 가꾸는 일도 없었고, 세상 일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신체적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기력과 밥맛도 떨어졌다.  본인은 한사코 '노인성 우울증세'를 부정했지만 사실은 누가 봐도 외롭고 가엾은 노인이 되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그토록 과거 젊은 시절 무용담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노년의 초라한 삶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언제든 맘 편히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다리가 아프더라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며 기를 쓰고 외출했더라면 어땠을까? 90대에도 꽃피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자신을 믿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젊을 때처럼 신간서적을 읽고, 현재 누릴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자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외모를 가꾸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멋을 추구했더라면 어땠을까? 평생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살아온 삶을 돌이켜 이제부터라도 엄마를 더 많이 아끼기 위한 노고를 아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평생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기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들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수많은  '만약'을 상상해 볼 때 아버지의 노년 생활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90을 바라보는 어머니 차례다.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보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훨씬 더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먼저 노년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셋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노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이가 우리를 규정하는 수단이 되거나, 우리의 삶을 제한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만 작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스스로 무엇보다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나이 드는 것을 축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세상의 낡은 방식들을 초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평생에 걸쳐 탐색하고 성취해 왔던 것들을 비로소 재미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마크 아그로닌. <지금부터 다르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30.

  

어떤 나이를 살아가든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삶에 대한 긍정성과 명랑한 분위기, 타자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일상의 많은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건강, 자신의 바람(want)을 알고 충족시킬 수 있는 실행력,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적응,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과의 사회적 교류, 작고 소소한 일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가 있다면 인생은 충분히 살만하다. 나이 들어서 불편한 것, 할 수 없는 것,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두면 노년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삶이 있을 거라 해도 왠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전에는 알 수 없었으나 내 나이가 되어보니 깨달아지고 새롭게 발견되는 지혜와 긍정적 변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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