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정의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를 읽고
#당신이빨리죽었으면좋겠어 #황은정
누구나 살다 보면 상처를 받는다. 먼지 마냥 휙 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도 있지만, 지겹다고 느낄 정도로 집요하게 발목을 잡는 무거운 것들도 있다. 나에게도 깊게 푹 찔린 상태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상처들이 있다. 중학교 때 왕따 당했던 일, 만나던 사람에게 헤어지자고 했다가 협박당했던 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옅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잠식해버렸다. 나는 유사하지만 새로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두려워했고 쉽게 무력해졌다.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의 저자 황은정 작가님 안에도 과거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다. 묻어 두었던 슬픔과 외로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감정의 파도가 요동쳤다. 지옥 같은 과정을 버티다가 때로 분노와 경멸이 남편에게 튀었다. 점차 악화되는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작가님은 상처를 마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독서, 글쓰기 수업, 108배, EFT 상담, 그룹 꿈투사 작업, NLP, 비폭력 대화, 명상, 코칭, 가족 세우기 워크숍, 내면 성장 워크숍, 휴먼 디자인, 애니어그램, 심리학 공부, 치유 상담 연구원 등(p.167) 수많은 시도를 했다.
내가 해묵은 상처들을 글로 꺼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 맨 처음, 첫 시도는 참으로 괴로웠다. 심리적 저항이 심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기도 했고, 여러 번 악몽도 꾸었다. 마치 상처를 한 번 더 겪어내는 기분이었다. 작가님은 '지독한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p.101)은 자신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돌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는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을까.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일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했다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감정이 널을 뛰려고 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이제는 이 구절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분노를 건강하게 밖으로 흘려보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분노가 나간 자리에 사랑을 채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그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p.130) 솟아나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 감정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보는 연습. 자기 사랑의 첫걸음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작가님의 말을 여러 번 마음에 적어보았다.
오랜 시간 외면하고 있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살아낸 과정이 꾹꾹 눌러 담겨 있는 책이었다.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제목이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당신은 반드시 괜찮아질 거예요.'(p.184)라는 구절로 과거로 침잠하려는 나를 건져 올린다. 공포에 사로잡힌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고 나의 힘을 믿어본다. 그 순간 요동치던 바다, 영영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잔잔해지고 아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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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상처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스스로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고 말해 주거나 믿을 만한 사람과 상처를 나누며 지지를 받는 것이다.
p.101 내가 느꼈던 지독한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은 바로 나였다. 갓난아이가 충분히 받아야 했을 따뜻한 돌봄의 손길/p.102을 하나씩 나에게 주었다.
p.123 아무 맥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상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맥락을 설명하고 적절한 강도로 화를 표현했을 때 건설적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p.143 부부란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경계를 지키며 존중하고, 그런 신뢰 위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 가는 관계였다.
p.184 내가 생명줄 처럼 잡고 버텼던 그 말을 이제 당신에게 해주고 싶다.
걱정 마세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당신은 반드시 괜찮아질 거예요.
p.192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 꽉 움켜쥔 손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서 듣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었다. 경청이란 단순히 듣는다는 것을 넘어 상대가 느끼는 감정과 그에게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추측한 것이 맞는지 상대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했다.
p.198 당신 안에 있는 힘을 믿는 순간, 바다는 기적처럼 평온해질 것이다.
p.202 나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면서 남편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려 애썼다. 나를 책임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내가 한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결과에 대해 불평하거나, 상황이나 남 탓을 하면서 피해자인 척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모든 상황에서 '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한다'는 자발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도 포함되었다.
(대체 텍스트, 이미지 설명) 갈색 지도 위에 무선 노트가 놓여 있다. 노트 오른쪽 면에 연필이 거의 90도 각도로 걸쳐져 있다. 노트 위로는 폴라로이드 사진 세 장이 겹쳐 놓여 있다. 노트 왼쪽 면 위에는 핸드폰이 놓여 있고, 핸드폰 화면에는 책 표지가 띄워져 있다. 책 표지는 주황색이고,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제목이 상단 중앙에 있다. 그 아래로 하늘색 직사각형 안에 무릎을 팔로 껴안고 앉아있는 얼굴 없는 여성의 까만 형태가 있다. 여성은 하얀 바닥에 앉아 있다. 직사각형 왼쪽에는 '관계에 지친 당신을 위한 심리 코칭'이 있고, 오른쪽에는 '황은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