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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 Reflexivity

by second half


로익 바캉(Loic Wacquant)은 현대 사회학 연구에서 부르디외를 다른 학자와 구분짓는 특징으로 “성찰성에 대한 집착(”his signature obsession with reflexivity”, Bourdieu & Wacquant 1992: 6)을 꼽는다. 성찰성은 부르디외의 초기 연구부터 후기 연구까지를 모두 관통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성찰성이란 사회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반드시 연구의 도구를 연구자 자신에게 돌려, 연구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와 주관성에 대한 한계를 밝히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순수한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초심 연구자로 감히 부르디외를 소환하여 글을 쓰고 있으니, 성찰성에 대해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가 잘 안되어 괴로운 시간, 넋두리를 하며 쉬어간다’라는 것은 내가 밝히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속 깊은 내면에는 여러가지 이해타산이 자리잡고 있다. '누가 알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거라도 쓰다보면 연구자로 안착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등등.


부르디외의 언어로 하자면 브런치 포스팅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자본, 문화자본, 경제자본, 상징자본을 획득할 속셈을 꼭꼭 숨긴 채, 나는 지금 하라는 연구는 안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며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는 매우 강력한 집필 동기이기는 하다.


내가 부르디외를 선택해서 박사논문을 쓴 것도 같은 이치이다. 몇 차례 탐색 끝에 나는 내 분야의 국내 박사논문 중 사회학적 이론을 적용한 논문의 수는 극히 드물고, 그 중 부르디외의 개념적 틀을 활용한 연구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지몽매했던 나는 뭔가 저 위대한 연구의 세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 훌륭한 연구 공백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던걸 하면 무식이 탄로날 것이니 처음 하는 것을 하는게 유리할 것이라는 나름대로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세상이라고, 남들이 하지 않은 연구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을 몰랐던 탓이다. 이렇게 나는 목차를 짤 때부터, 어떤 참고문헌으로 이론적 배경을 채워야 하는가까지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거대한 삽질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Bourdieu, P., & Wacquant, L. J. D. (1992). An Invitation to Reflexive Sociolog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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