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르디외가 내게로 왔다
나는 하고많은 연구 중 번역사회학을 선택했고,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개념을 빌어 번역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나라는 사람의 아비투스(habitus, 사회적 존재인 개인이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체득한 기질 체계, Bourdieu 1977: 72-73)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십 수년 실무에 종사하다 우연한 기회에 마음이 동하여 학교로 돌아온 만학도이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석사학위를 따면서 연구의 그 어떤 것도 해본 적이 없다. 논문을 읽거나 찾아본 적도, 학회에 가본 적도 없다. 내가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던 옛날 옛적 교수님들은 모두 석사 출신 실무자셨다. 교수님들 통역 일정으로 토요일 하루종일 몇주차 수업을 연달아 보강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요즘은 이러면 강의평가 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연구 능력 출중하신 교수님들 덕분에 이론 수업도 기본적으로는 이루어진다.
이러한 연유로 초보 연구자인 내가 그나마 비빌 수 있는 언덕은 오로지 실무 경험밖에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연구에 무지했던 나는 배운 도둑질에 기대야만 쏟아지는 문헌들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무자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은 연구로 풀어놓기에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소하고, 일반화와 접근이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였으며 어떤 이론을 적용하기에도 애매했다. 되겠다 싶은 연구는 이미 다 되어 있어서 굳이 보탤 필요가 없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이랄까.
그런데 어느 날 부르디외가 내게 왔다. 참 사소하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너의 실무 경험도 아비투스, 장(field), 자본(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한 번 바라보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이 개념들은 실증적 경험, 실천 사례와 만나면 빛을 발하니 너의 사례도 한 번 얹어보라고 부르디외는 내게 속삭였다.
부르디외(Bourdieu & Wacquant 1992, pp. 158-162)는 이론적 개념에 대한 논의는 오직 실증적 사례가 뒷받침되어야 의미가 있으며, 개념이란 실증적인 사례가 존재하는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일시적 구성물(temporary construct)’(p. 16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실제 실천 양상 없이 이론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실무경험 뿐이었고 한꺼번에 쏟아지는 이론적 논증의 폭탄에서 길을 잃었던 나는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후에 연구를 하며 과연 이것이 아군인가, 적군인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곱씹어보는 순간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부르디외의 유혹을 무시할 수 없었고, 덥썩 손을 잡았다. 이렇게 나는 부르디외를 만났다.
Bourdieu, P. (1977). Outline of a theory of practice (R. Nice,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Bourdieu, P., & Wacquant, L. J. D. (1992). An Invitation to Reflexive Sociolog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이 책은 부르디외와 제자 로익 바캉 Loic Wacquant의 공저로, 두 사람의 심층대담을 바탕으로 부르디외 사회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는 입문서이다. 부르디외 사회학의 필독서로 꼽히며, 한국어 번역서 역시 훌륭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Bourdieu, P., & Wacquant, L. (2015).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이상길 옮김). 그린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