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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Feb 05. 2021

삶이 꽃처럼 지고 있다.

그림들이 꽃처럼 시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그림이 꽃처럼 시든다 라는 말을 남겼었다.

고흐는 여러 점의 꽃 정물화를 남겼고, 그 꽃들이 어떻게 시들고 지는지, 꽃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한지 수없이 관찰했을 것이다. 그런 고흐에게, 그림은 자신 그 자체였을 고흐에게 그림이 꽃처럼 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꽃처럼 진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꽃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의 사람들은  

결국 시들어버리는 꽃을 받는 것도, 그 꽃을 처리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해서 싫다고들 한다.

   

매일 꽃을 접하는 나에게도 시든 꽃을 정리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버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혹여나 나의 부주의로 인해 더 빨리 시들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죄책감을 가진채  고개가 꺾이고 꽃잎이 후드득 떨어진 그들의 떠난 뒷모습을 쓸어 담는다.

어떻게든  내 곁에  좀 더 붙들어두고자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고개를 숙여버리는 꽃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며 결코 붙잡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나의 꿈을 현실 앞에서 놓아주고, 드높았던 내 이상을 현실에 끼워 맞춘다 평생 함께 할 것 같았던 오래된 친구들이 삶의 갈림길 속에서 나와 다른 방향을 향해 멀어져 가지만 붙잡지 못한다.  그리고 한때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만 흘러가던 내 청춘이 , 언제 하루가 끝나나 했던 무기력했던 내 지난날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나는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의 덧없음을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비유하듯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도 영원할 것 같던 순간도 붙들어 둘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꽃을 좋아한다는 건 아마 그 꽃이  화려하게 핀 순간을 좋아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예전의 나는 그랬었다.

만개한 화려한 모습과 팔레트를 색색별로 채운듯한 다채로운 색상의 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렇게 나의 꽃을 향한 사랑은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 순간이 오래가지 못하기에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절화는 길게는 2주일, 짧게는 3일 안에 시들어버린다. 하지만 봉우리였던 어제의 꽃이 오늘은 꽃잎을 벌리고  내일은 조금 더 활짝 피고 그다음 날은 고개를 떨어트리고 며칠 뒤에는 꽃잎을 하나둘 씩 떨어트리는 과정을 매일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을 만큼 경이롭게 여겨진다.  고개를 들어 활짝 핀 순간도,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다 결국 후드득 떨어지는 그 순간도 모두 나에게는 애틋하고 소중하다.  


덧없는 꽃의 삶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꽃잎이 지고 시들어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길지 않은 그 순간들이 모두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꽃을 보듯 내 삶을 보고 싶다.

나의 행복했던 순간도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도 그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순간들 마저도 내 삶의 과정이었고,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나에게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고 또 놓아주어야 할 순간들이 의미 있게 기억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


얼마 전 우연히 나의  25살 시절 블로그 기록을 보았다.

"누구나 한 번은 살면서 꽃을 피운다는데 나는 과연 피울 수 있기는 한 걸까."라는 자조적인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삶과 꽃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 시절을 지나온 39살의 나는 과연 꽃을 피웠었던가? 아직도 피우지 못했을 수도, 아님 봉우리가 만개해가는 과정일지도, 아님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꽃처럼 아름답게 지고 있다.

라고 먼 훗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을 애틋해하며 열심히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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