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수업이 있거나 주문이 있을 경우 주로 아침 시간보다 새벽시간에 꽃시장을 찾는 편이다.
새벽 1~2시, 너무 고요하고 깜깜해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드는 칡 흙속 서울을 달려 도착한 강남 고속터미널,꽃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느리게만 돌아가던 나의 시계와는 반대로, 새벽 꽃시장은 자정 12시에 개장하여 오후 1시에 끝이 난다.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하지 않는 이곳은 새로운 꽃이 들어오는 요일 , 혹은 졸업식이나 어버이날 시즌에는 들어서기 전부터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 정신을 가다듬고 계획한 일을 모두 끝내고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들어서는 곳이다.
층층이 쌓인 꽃박스들, 비좁은 통로와 흩어진 신문지 더미들을 헤쳐나가는 수많은 인파들, 그사이를 비집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장님을 외치는 소리들, 그 속에 있으면 내 목소리도 덩달아 올라가며 발걸음도 빨라지고 눈도 번쩍 뜨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에 오르던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하루를 열정적으로 시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곳에 있을 때면 진짜 현실에 발을 딛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패배감에 휩싸여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
새벽 꽃시장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한동안 꽃을 손에서 놓은 적이 있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던 어느 새벽, 꽃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비좁은 통로 사이를 채운 많은 사람들로 인해 한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렇게 인파에 떠밀려 시장을 한 바퀴, 두 바퀴 돌았다. 그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다시 이들처럼 오늘을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자 알 수 없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위태롭고 불안했던 부유(浮遊)를 끝내고 드디어 땅에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요즘도 가끔씩 새벽시장에 들어설 때면 그때 그 벅찼던 감정을 떠올린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이 오늘이고, 현재이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고 싶다면 새벽 꽃시장에서 하루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