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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직업은 없었다

영화 '극한직업' 편

by 별의서랍


“자기야, 우리 식당 한 번 해볼까?”

“그러게, 손님들 봐, 도대체 얼마나 버는 걸까?”

자주 가던 해장국집을 나서며 아내와 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매장 안 북적이는 손님들을 보니 부러움이 밀려왔다.
역시 부자가 되려면 사업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저렇게 장사하면 몇 년 안에 건물주도 되겠다.”


다니던 회사가 하찮게 느껴졌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론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연봉에 복지까지 챙기고,
아는 친구의 친구는 스타트업으로 대박이 났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십년 이상 굽실거린 영업 일도 슬슬 지겨웠다.
’을‘은 이제 끝내고, 당당히 ’갑‘이 되고 싶었다.

떳떳하게 내 매장 하나 차려서 우아하고 당당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영업사원이 아닌,’사장님‘ 소리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푼돈 몇 백이 아닌, 월 천만 원 쯤은 벌어보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우리 둘이 힘 합치면 못할 게 있겠어?”

그렇게 아내를 설득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상권조사, 부동산계약, 레시피 교육...
뭐 하나 쉬운 건 없었지만, 월 천 만원을 꿈꾸며 버텼다.
3개월이 훌쩍 지나, 드디어 우리만의 매장 앞에 섰다.

이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해외여행에, 한강조망 아파트에, 수입차는 그냥 기본옵션일 줄 알았다.

그 장밋빛 미래는 정확히 3개월 만에 무너졌다.


오전 7시 : 매장 출근.

7∼10시 : 재료손질 및 오픈 준비.

10시 반 : 오픈 → 오후 2시까지 숨 쉴 틈 없음.

오후 2∼5시 : 밀린 설거지 및 저녁 장사 준비.

오후 9시 : 가게 마감 → 지옥 같은 뒷정리

오후 11시 : 드디어 퇴근.

오후 12시 : 집 도착. 씻고 하루 정리.

새벽 1시 : 취침

오전 6시 : 기상 및 지옥 리플레이.


사장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여유 넘치는 생활만이 존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 5일제 직장인이 제일 부럽다.
공휴일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어도 소원이 없겠다.

’을‘이 싫어 창업했는데, 이제는 ’슈퍼 을‘ 이 됐다.




내가 매일 밤 자기 전에 틀어놓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극한직업>

마약조직을 잡으려다 치킨집을 운영하게 된 형사들의 이야기.
범인을 잡기 위해 시작한 치킨장사는 의도치 않게 대박을 치게 되고,
본업과 치킨장사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위트 있게 전개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너무나 유명한 대사다.
범인도 잡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치킨집도 소홀할 수는 없다.

형사는 목숨 걸고 범인을 잡는다.
장사는 목숨 걸고 고객을 잡는다.

세상에 쉬운 건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극한직업이다.




간만에 매장을 일찍 마감하고 영화 한편 보려던 순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사장님, 옆집인데요! 비가 많이 와서 매장 앞이 난리에요!”

아, 오늘도 쉬기는 글렀다.
사장 따위, 개나 줘버리고 싶다.

“지금까지 이런 직업은 없었다.
이것은 자영업인가 생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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