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31일 자정이면 제야(除夜)의 종을 타종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게 된다. 제야(除夜)는 '어둠을 걷어내고 밝은 새해를 맞이한다'라는 의미다. 주변 사람에게 "왜, 제야의 종을 서른세(33)번 칩니까?"라고 물으면, 세 명 중 두 명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닌가요"라는 답변을 한다. 그럴듯한 생각이다. 33번의 타종 의식과 민족대표 33인의 숫자가 일치한 것에서 비롯된 생각일 것이다(실제 민족대표는 48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외에 준비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지만 뒷일을 처리하기 위해 명단에서 빠진 15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는 자와 이름을 감추지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도 통행금지를 해제한다는 신호로 종각(鐘閣)의 종을 서른세 번 쳤다. 이를 파루(罷漏, 또는 바라)라고 한다. 종을 치는 기준은 오경삼점(五更三點)이다(하룻밤의 시간을 오경(五更)으로 나누고 그 경을 다시 다섯으로 나누어 점(點)이라 하였다). 오경(五更)은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이니 오경삼점은 새벽 4시 경일 것이다. 왜, 조선에서는 파루 때에 서른세 번의 종을 쳤을까? 전문가들은 불교 우주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수미산의 꼭대기에 도리천(忉利天)이라는 하늘이 있다. 도리천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마다 천인(天人)들이 사는 8개의 천성(天城)이 있다. 중앙에는 제석천(帝釋天,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신)이 사는 궁전인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33개의 천궁(天宮)이 된다. 도리천을 '33천(天)'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천(天)'은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33천'이라는 인도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번역한 것이 '도리천'이다). 제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것은 수미산 정상 도리천에 사는 33명의 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찰에서는 어떻게 타종할까? 불교의 우주관에 따라 타종한다. 사찰의 종은 대개 범종(梵鐘)이라 부르며, 크기에 따라 소종과 대종으로 나뉜다. 소종은 법당 내에 두고 사용하며 대종은 법당 외부의 종각에 매달아 놓고 친다. 이 대종은 새벽에 28번, 저녁에 33번을 타종한다. 아침의 28번은 시방세계(十方世界), 즉 욕계(欲界) 6천(天), 색계(色界) 18천(天), 무색계(無色界) 4천(天) 등 28계(界) 세상을 다 열어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소리이고, 저녁의 33번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선견성을 포함한 도리천 등 33천(天)마다 부처님의 음성이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욕계는 식욕이나 성욕, 분노와 같은 동물적 감성을 갖는 거친 중생들이 사는 세계이고, 색계는 이런 동물적 욕망을 완전히 끊어서 ‘빛과 같은 몸’을 갖는 고결한 천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며, 무색계는 그런 몸조차 사라지고 오직 정신적 삼매의 경지만 지속되는 세계다. 삼계는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등 여섯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를 육도(六道)라고 부른다. 삼계 가운데 색계와 무색계는 모두 천상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제야 행사에서 서른세 번을 타종하는 것은 사찰의 타종 횟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의 우주관에 근거하여 타종 횟수를 따르고 있지만, 33번 치는 타종의 의미는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불교행사는 아니다. 유교를 국시로 했던 조선에서 불교행사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 국가 조선에서 불교적 우주관을 빌어 국가의 평안과 백성의 안녕을 종소리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종소리의 울림 속에는 경천애민(敬天愛民), 즉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고자 하는' 군주의 의지를 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시간은 통치자가 백성을 통제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간은 독점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만민의 것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건국 직후 한양 한복판에 종루(鐘樓)를 짓고, 큰 종(大鐘)을 걸어 놓고 시간을 알렸다(시간이 지나면서 전국의 주요 지역의 특정 지점에서도 시간을 알렸다). 인정 때는 종을 치고, 파루 때는 북을 치기도 했다. 인정에 종을 치는 제도는 고대부터 행해지던 제도였지만, 파루 제도는 조선 초에 처음 생겼다. 인정과 파루 사이는 통행금지 시간으로 도성 안의 모든 사람은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순라꾼에게 들키면 경수소(警守所)로 잡혀가서 날이 새면 곤장을 맞았다. 처음에는 초경 때 잡혀도 50대를 맞을 정도로 심하였으나, 나중에는 초경과 5경에는 10대, 2경과 4경에는 20대, 3경에는 30대를 맞았다. 고종 때에는 인정과 파루 때에 종을 치는 것과 함께 정오, 인정, 파루 때에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에서 대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오포(午砲)라고 했다. 1895년 10월 29일부터 인정과 파루, 그리고 경·점 때에 종·북·징을 치는 제도는 중지되었다.
종로 보신각에서 서른세 번 타종하는 제야의 종소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늘에 종소리를 올려보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다. 33번의 타종은 불교의 우주관과 유교의 통치관이 혼재된 숫자지만 좀 더 깊이 따져보면 하늘과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상이 스며있다.
오늘날 지구인들은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른 행성에 여행을 가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물질문명의 풍요만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다. 하늘을 공경하기는커녕 밤하늘의 별조차 보지 않고 사는 칠흑의 세상은 아닌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어둠을 걷어내고 밝은 날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매일 자정마다 제야(除夜)의 종을 쳐도 좋을 듯싶다. 그나마 산사(山寺)와 교회와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일상에서 경천애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이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산사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유달리 은은하다.
김성철. (2021). 불교신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3월 22일.
(2011). 중앙선데이. 3.1 운동 민족대표는 ‘33인’ 아닌 ‘48인’이었다. 11월 20일.
박경준. (2020). 코리아트리뷴. 도리천과 수미산, 그리고 우리 문화. 12월 11일.
이정우. (2020). 불교신문. 제야의 종 33번 치는 이유는? 2월 29일.
<시보, 인정과 파루>. 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