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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순간에 결단하라

by 염철현

항우와 유방이 관중땅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는 장함(章邯, 장한이라고도 부름)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반진(反秦) 세력을 섬멸하도록 했다. 장함은 지략과 용맹이 뛰어난 진나라의 명장으로 정평이 난 장수였다. 실제 장함은 반진세력의 우두머리였던 항량을 죽이면서 그 진가를 여지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숙부 항량의 자리를 이어받은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거록(鉅鹿)대전에서 항우군은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장함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항우는 무모하면서도 대담한 작전을 펼쳤는데 이는 항우만이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배수진 전략이었다. 항우는 모든 배를 강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부수고 막사를 불태우고 군사들에게는 사흘 치 식량만을 지니게 했다. 파부침선(破釜沈船), 즉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라는 고사의 유래다. 파부침선은 싸움터에 나가면서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상징한다. 전쟁이란 군사와 병참, 무기와 같은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군사들의 사기, 전술전략 등 소프트파워가 중요하게 상호작용하는 법이다.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한 항우군은 천하무적으로 감히 대적할 군대가 없을 정도였다. <사기>에 의하면 "초나라 전사들은 한 명이 열 명을 대적하였고 군사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까지 진동해 제후의 모든 군사들이 두려워했다. 항우가 제후들의 장수를 한 사람씩 들어오게 했는데 무릎걸음을 하고 앞으로 들어왔고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 못했다"라고 한다. 초한쟁패기에 거록대전은 항우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전투로 이후 제후들은 항우에게 귀속되었다.


장함 군대가 거록대전에서 패함으로써 진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장함은 거록대전에서 패한 후 항우군과 싸우는 것을 피했다. 싸우면 질게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함이 항우와 대치 상태를 계속하자 2세 황제 호해가 사람을 보내 장함을 꾸짖었다. 장함은 사람을 시켜 사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진나라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조고가 만나주지도 않고 오히려 장함을 죽이려고 했다. 장함은 전쟁에서 이겨도 죽고 져도 죽는 마당에 차라리 항우에게 투항하자고 결정한다(중국 드라마 <한신>에서는 한신이 조고와 장함 사이를 이간 시켜 장함의 항복을 받았냈다고 연출했다. 한신이 장함의 부하가 함양의 조고를 만나 장함이 항우에게 항복하기 위해 사전에 그의 가족들을 데리올 것이라고 귀띔한다. 한신의 계략에 넘어간 조고는 장함의 부하를 만나주지 않았고 결국 장함은 항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한신의 지략을 한껏 띄워주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장함이 항우에게 항복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항우는 장함을 숙부 형량을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고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항복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이때 책사 범증이 항우에게 항복을 받아들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베풀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됩니다. 때가 이르렀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여불취, 반수기구, 시지불행, 반수기앙(天與弗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 쉽게 말하자면,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도리어 화를 입거나 낭패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는 '천여불취 반수기구'에 대한 유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한신은 유방(劉邦)에게 대장군으로 등용된 뒤 많은 공을 세웠다. 한신이 제(齊) 나라를 공격하자 항우가 대군을 파견하여 막으려 하였으나 참패하고 말았다. 이에 항우는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 유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셋이서 천하를 삼분하자는 뜻을 전하였다. 한신은 자신을 등용한 유방을 배반할 수 없다 하며 거절하였다. 무섭이 돌아간 뒤에 제나라 출신의 책사인 괴통이 한신을 설득하였다.


괴통은 한나라와 초나라의 운명이 한신에게 달려 있다고 하였다. 곧 한신이 한나라와 한편이 되면 한나라가 승리하고, 초나라와 한편이 되면 초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한신이 독립하여 천하를 삼분하는 형세를 이루면 어느 쪽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전쟁의 와중에서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며, 결국 천하의 군왕들이 한신의 제나라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괴통의 말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왕은 나를 아주 후하게 대해주었으며, 자기의 수레에 나를 태워주었고, 자신의 옷을 나에게 입혀주었으며, 자기가 먹는 음식을 나에게 먹여주었습니다.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남의 일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어찌 의를 배반하겠습니까?"


괴통은 마지막에, "하늘이 준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게 될 것이며, 때가 이르렀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로 한신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끝내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고 하며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중에 한신은 유방의 견제를 받게 되었고, 결국 유방의 황후인 여후(呂后)와 승상 소하의 계략에 넘어가 죽음을 당하면서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일을 후회하였다.


한신은 참형으로 삶을 비참하게 마감하였으니 그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쳐 별의 순간이 별똥별이 되어 사라졌다. 결단의 순간에 결단하지 못한 처참한 결과였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재앙이 되어 돌아오는 법인가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두 번쯤은 결단을 해야 할 운명적인 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 별의 순간은 하늘이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베푸는 특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별의 순간이 찾아왔는데도 문틈으로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결단해야 할 별의 순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알림문자서비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의 운명에 별의 순간이 찾아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깊은 통찰력과 안목이 필요한 법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생에 별의 순간이 찾아왔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데 자칫 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다 별똥별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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