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자는 일반 대중보다 더 높은 수준의 덕목과 능력을 요구받는다. 도덕성, 추진력, 판단력, 솔선수범, 겸손, 설득력 등등... 그 덕목 중에서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일 것이다.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한 지도자들 중 뛰어난 능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많지만, 참모들이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할 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잘못을 고치려는 지도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게 되면 그의 체면이 깎이고 위신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 역시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인간적인 지도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이다.
한나라를 창업한 한고조 유방(劉邦)은 인간적으로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방의 위대한 점은 자신과 참모 사이에 언로를 열어두고 참모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고치려는 자세에 있지 않나 싶다. 장량(張良)과 소하(蕭何)가 천거한 한신(韓信)이 드디어 한나라의 군대를 총괄하는 대원수, 즉 오늘날의 참모총장에 취임에 즈음에 일어난 사례를 보자. 유방은 다른 장수에게 늘 하던 대로 한신에게도 대원수의 직책을 제수하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다. 승상 소하가 유방에게 진언한다. "대왕께서는 대장들 다루기를 어린아이들 다루듯 해오셨습니다. 한신을 그런 식으로 다루신다면, 녹봉을 아무리 후하게 주어도 결코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유방은 '대장군 직책에 걸맞은 녹봉을 후하게 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소하의 진언에 대한 유방의 반응이다. "아, 나에게 그런 잘못이 있었던가요? 그렇다면 승상이 지적하신 결점을 고쳐 가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절차를 밟아서 임명하면 될지, 기탄없이 의견을 말해주십시오." 유방과 소하의 대화에서 한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한신 대원수 취임식은 대단히 화려하고 성대했다. 취임식 제단은 높이가 30장(1장은 사람 키 정도의 길이)에 넓이는 3천 평이나 되었다. 식장 좌우에는 정병 50명이 부월(斧鉞)을 들고 정렬하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의장병들이 푸른 옷, 붉은 옷, 하얀 옷, 검은 옷을 입고 깃발을 들고 둘러싸고 있었다. 문무백관들이 용상 좌우에 엄숙히 도열했다. 취임식날 유방은 예복을 갖춘 뒤에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한신이 거처하는 영내까지 친히 영접을 왔다.
유방과 항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하지만, 항우와 비교하여 유방의 강점은 바로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부족함, 잘못, 결점을 고쳐나가려는 자세일 것입니다. 반면 항우는 거친 성격에 고집이 얼마나 셌던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결은 지도자의 덕목에서 차이가 났다. 군사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모든 일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항우와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천하의 인재들을 중용하며 힘을 길렀던 유방의 처신에서 판가름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