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왕릉과 서서의 모친 이야기
대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영웅들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유방 휘하의 장수 왕릉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왕릉은 무예가 뛰어날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였다. 왕릉은 항우와 같은 고향 팽성 출신인데 유방을 섬겼다. 항우도 동향인 왕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수하에 두고 싶었다. 항우는 왕릉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일 욕심으로 왕릉 모친을 볼모로 잡아두고 모친을 죽인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적장의 부모를 볼모로 삼고 투항을 요구하는 것은 비겁한 술책이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전쟁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항우가 모친을 죽인다는 소문을 들은 왕릉은 금방이라도 항우 진영으로 달려가 모친을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항우의 계략이라는 것을 뻔히 내다보는 책사 장량은 모사 숙손통(淑孫通)을 보내 왕릉의, 모친이 항우 진영에 볼모로 잡혀있는 것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노모의 친필 서한을 받아오게 한다.
숙손통은 항우 진영으로 찾아가 왕릉의 모친을 만났다. 숙손통은 왕릉의 모친에게 "왕릉이 모친이 고초를 겪고 계시다는 소식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친필 서한을 써 주시면 즉시 모친을 뵈러 달려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왕릉의 모친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소리로 숙손통을 꾸짖었다. "당신은 그런 말 같지 않은 말을 합니까. 나는 내 아들이 관인대도(寬仁大度)한 한왕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차하게 일시적으로 생명을 아끼기 위해 어떻게 내 아들이 역적 항우에게 항복하여 악명을 남기라고 말하겠습니까. 빨리 돌아가서 내 아들에게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해주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호위병의 허리에서 칼을 낚아채 가슴을 찔러 자살하였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유비 휘하에서 책사로 활약했던 서서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다. 서서는 제갈량, 방통과 함께 형주의 재사(才士)로 알려졌다. 유비가 형주 북쪽 산야(山野)에 머물며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을 때, 조조군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서서는 귀신같은 계략을 펼쳐 조조군의 예봉을 꺾어놓았다. 유비군을 과소평가했던 조조는 서서의 존재를 알고 그의 모친을 볼모로 삼는다. 조조는 서서를 자기 진영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모친의 친필을 위조하여 서서에게 보낸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네가 유비 곁에 있는 것 때문에 조조에게 문책을 당했는데 다행히 신하 정욱이 잘 돌보아 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쓸쓸하니 허도로 돌아와 자신을 돌보아 달라." 효성이 지극한 서서는 모친의 가짜 편지를 받고 조조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서서는 더 머물러 달라는 유비의 간청을 물리치고 조조 진영으로 달려갔다. 서서는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와 상봉을 했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어머니가 "그런데 애야, 너는 유황숙 밑에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묻는다. 서서가 "어머님, 소자에게 보내신 편지에 조조가 어머님을 옥에 가두어 고초를 겪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연유로 어머님을 구해 드리려고 바삐 달려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발끈하며 "난 한 번도 그런 편지를 쓴 적이 없다. 그건 너를 이곳에 불러오기 위한 술책인 게로다. 그런데 너는 그걸 알아보지 못했단 말이냐?"라고 말하며 아들을 나무랐다. 서서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아들을 힐난했다. "애야, 서야, 너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글을 많이 읽었는데, 충(忠)과 효(孝)를 같이 하긴 어렵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유황숙은 인의로운 분으로 현명하고 덕이 있는 분이라고 천하가 다 알고 있지 않느냐? 게다가 황실 종친으로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한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어떤 인간이더냐, 군주를 기만하고 핍박하는 간적이 아니더냐! 서서야! 어미는 네가 그릇된 판단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몰랐어! 어쩌다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더란 말이냐!" 서서가 모친의 힐난을 듣고 엎드려 울고 있을 때 모친은 객관 대들보에 목을 매 자살했다.
자식이 잘못된 대의를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식을 올곧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어머니는 위대하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위대하다'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어머니들은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인의의 정치를 펼치는 진영에서 일하는 자식에 대해 긍지를 갖는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모전자전의 DNA는 예나 지금이나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