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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니 Sep 17. 2023

생동하는 뉴욕에 젊음을 걸고 싶어

40일간의 배낭여행 첫 번째 행선지

1. 쨍한 초록색의 플릭스 버스가 맨해튼 한복판 미드타운 31번가에 멈춰 서자,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익숙하다는 듯이 작은 배낭을 안고 잰걸음으로 빠르게 벗어나는 양복쟁이가 있는가 하면, 기타를 메고 정신없이 눈을 돌리는 아마추어 뮤지션도, 피곤에 든채 무거운 짐가방을 등에 업은 유학생도 있다. 벌써  번째 뉴욕이지만  때마다 콘크리트 정글에 한없이 작아져 내리자마자 구글맵부터 켜는  같은 어설픈 관광객도 있다.


비교적 정적이었던 DC에서 하루에 박물관만 4개씩 다니다가 넘어온 뉴욕은 골목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 있다. 티모시 샬라메가 단골이라는 베이글집에서 딜버터 끼워 넣은 따끈한 베이글 하나 투고해서 벤치에 주저앉아 한입 베어문다. 허기가 가시자 그제야 들어오는 생동하는 도시의 모습. 한창 뉴욕대 졸업시즌이라 여기저기 상기된 얼굴의 보라가운이 기웃댄다. 한쪽에선 무술 연습에 심취하신 도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나무 막대를 휘두르다 말고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니, 오 태권도의 나라에서 왔구나. 우리 도장에도 태권도 고수가 있지. 알고 보니 브루클린에서 무술 도장을 운영하시던 관장님과 짧은 스몰톡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반대편에선 온몸에 물감을 잔뜩 묻힌 행위예술가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어거스트 러시를 보고 낭만적인 버스킹을 기대하며 찾은 워싱턴스퀘어가든에는 기타 수보다 대마초 상인이 더 많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뉴욕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2. 일주일 간 뉴욕을 말 그대로 ‘싸돌아다녔다’. 어퍼맨해튼부터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부시윅까지.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더군다나 여기는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 뉴욕. 한정된 시간이 원망스러워 앞으로 다시 안 올 것도 아닌데 괜히 조급해졌다. 여행 갈 때만은 무계획을 추구하며 발 닿는 대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이번 뉴욕 여행에선 메모장에 빽빽하게 날짜별 계획까지 세웠다. 덕분에 계획한 대로 뉴욕을 훑어보기는 성공했지만, 조금은 숨이 차는 여행이었다 (다시는 이렇게 다니지 않으리 다짐하고 유럽에선 완전히 무계획으로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다닌 장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하이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이나 타임스퀘어도 아닌 옛 철길을 개조한 도로 위의 산책로. 하이라인을 걷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하나 포장한 뒤 베슬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꽤 가까이 바다가 보였다.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빌딩숲, 왼쪽은 바다라는 점이 꽤나 특별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하이라인 밑에서 저마다 복작대는 일상들. 위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정말이지 바쁘고 정신없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 생동이 도시에 숨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다. 내게 뉴욕은 그런 이미지가 되었다. 사람들의 열정을 동력 삼아 불을 밝히는 도시.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제이지의 노래에 발을 까딱거리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 틈에 너무나도 끼고 싶다고. 도시가 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3. 너무나도 사랑하는 뉴욕이지만,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바로 물가. 뉴욕에서 번듯한 호텔방을 바라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봄방학 마이애미 여행에서 머문 호스텔이 너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이번 뉴욕여행에서도 호스텔 숙박을 선택했다. 대형 호스텔인 만큼 사람들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프렌들리 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여행 사흘차에 너무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L은 마이애미에 살고 있는데, 나처럼 혼자 뉴욕을 여행하고 있었다. 같은 방 옆침대였던 덕분에 말을 텄는데,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가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었다. L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고 나는 스페인어를 몇 마디밖에 못해 처음에는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사람을 만날 때 언어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각자 일정을 마치고 타임스퀘어에서 만난 우리는 수많은 전광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주변 피자집에서 연애이야기로 금세 절친이 되었다. 상점에서 마가리타 보틀을 사 와 호스텔에서 수다를 떨고 있으니 커먼룸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말을 걸어왔다. 뉴욕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청년, 스탠포드 입학 전 동부 여행을 하는 예비대학생, 출장차 들른 세일즈맨까지.


세계 각기에서 온 사람들과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각자 살아온 이야기부터 꽤 철학적인 주제로 깊은 대화까지 주고받다 시계을 보니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쉽게도 친해진지 하루 만에 L은 마이애미로 돌아갔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은 채 아쉽게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것도 호스텔 인연의 숙명이자 매력이다.


4. 뉴욕에서의 마지막날, 보스턴에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A가 뉴욕에 놀러 오기로 했다.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온 A는 파리에서 지낼 때는 시도조차 못했던 과감한 상의를 입었다고, 이게 뉴욕이라며 의기양양해 했다. 홀가분해 보여 나까지 행복해진 동시에, 우리가 어디서든 남 시선 신경쓰지 않고 입고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와 함께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다 그의 저녁 공연 데이트에 엉겁결에 초대받았다. 뉴욕예술학교 주최의 퀴어 커뮤니티 학생 공연이라고 해서 리메이크 셰익스피어 연극 같은 걸 기대하고 갔는데, 드랙을 소재로 한 카바레였다. A와 나 둘 다 예상치 못해 약간 당황했으나, 짧은 눈빛 교환 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냥 즐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행자 신분으로 지역 커뮤니티 내 다양한 사람들과 무려 드랙쇼에서 만난다는 점이 너무 뉴욕 스럽다고 생각했다. 공연은 즐거웠고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뉴욕은 마지막까지 나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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