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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Jan 16. 2022

최후의 꿈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옛사람들은 삶을 일러 곧잘 꿈으로 비유하곤 했었다.

인생(人生)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으니, 한 바탕 봄날의 꿈이라고 자조했는지 모른다.

헛된 영화(榮華) 부귀(富貴)가 덧없음을 노래하여 인간의 욕망을 경계했다.

그런 꿈이 허망한 것임을 모르는바 아니면서도 늘 꿈을 꾸며 꿈속을 헤매고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나 내 꿈의 마지막은 좌절과 절망으로 탈색되어, 천 길 벼랑 끝에 내 작은 몸을 내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크게 비웃으며 멀리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것은 악몽일 수밖에 없는 두려움으로 내 반평생을 괴롭혀왔고, 내 삶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삶이 황폐해져서 성난 파도로 난파하기 직전의 조각배처럼 위태롭게 표류하고 있었다. 어쩌면 꿈조차도 꿀 수 없는 시리도록 아프고 서러운 세월을 살아, 꿈과 현실을 오고 가며 방황하게 했던 반평생이 분하고 억울해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꿈은 내게 있어서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질없는 욕심이었고, 괴로운 피맺힌 절규며, 한(恨)으로 가슴에 꽂힌 비수였다. 파랑새를 쫓아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끝없는 아득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무모한 삶에의 어리석은 도전이었고 몸부림이었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비록 악몽이라 해도 꿈을 버릴 수 없어 봄날 툇마루에 앉아 졸며 또 꿈을 꾸어야 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러나 느날부터인가 정말 마지막 최후의 꿈을 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꿈이 허락되지 않을 만큼, 이미 나는 충분히 늙어 있었으니, 자존심, 두려움, 민망함과 부끄러움 따위의 사치스러운 조각들은 거리를 방황하는 길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알몸이 되어 새로운 마지막 꿈을 찾는 나그네가 되기로 한 것이다.


하늘의 부름으로 가다 중단하는 한이 있어도,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내 고독한 삶이 너무 서러워 꺼이꺼이 통곡하길 그 얼마이었던가? 술 한 모금에 눈물 한잔뿌리며 배움에 목마름과 사생결단을 했던 세월은 또 어디서 되찾을 수 있을까? 타는 갈증을 참지 못해 차라리 불꽃같이 지리라고 생사를 가름할 수 없는 전장에 뛰어들었으나, 하늘은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전장의 한 복판에서도 살아 돌아온 내게, 환갑이 훨씬 넘어 찾아온 이 마지막 기회를 망설임으로 무산시킬 수는 없었다. 내 최후의 꿈을 이루기 위한 대장정에 걸림돌은 이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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