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rew Dec 30. 2021

반세기 만에 이룬 스승의 유지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스승의 날이 되면 내게 꿈을 심어 주셨던 초등학교 육 학년 담임을 하신 P선생님이 생각나는 건, 그분과의 있었던 어느 겨울밤 내 추억담이 내가 문단에 등단하게 된, 소위 등단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당신이 내게 당부하신 여러 가지 것들 중에 하나인 문인이 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별명은 <직사포>로 불릴 만큼 어린이들에게는 악명(?)이 높았다. 당시 경찰 고위간부를 아버지로 두신 선생님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춘천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약관 스물넷의 나이에 열두 살이 주축이던 우리들의 선생님이 되셨으니, 나와는 띠 동갑니다. 

우리들이 1959년 졸업을 하고 이듬해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찰간부였던 부친이 검거되어 파면되자, 선생님은 큰 충격에 빠졌었다고 한다. 의욕이 넘치고 정의감이 투철하셨던 선생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직책상 자유당 정권에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부친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생님은 일벌백계의 호랑이 선생님으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당시 춘천시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던 멋쟁이기도 했고, 전기가 부족했던 당시, 발전기가 불을 밝히기도 하고, 마이크를 작동시키는 전원 이기도 해서 각광을 받을 때, 춘천시내 모든 초등학교의 발전기 기사 역할까지 도맡아 하셨기 때문에 더 유명세를 탔다. 


K읍에서 부모님의 실패로 전학을 갔던 첫해는 견디기 힘든 혹독한 가난으로 배곯이를 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5학년 때는 지금까지 늘 받아오던 우등상을 받지 못하고 6학년으로 진급될 때, 급우들은 호랑이 직사포 선생님이 담임이 된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내심 반기고 있었다. 원칙주의자인 만큼 정당한 평가, 편애 없는 선생님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당시 나는 5학년 때, 전학생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극심한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춘천사범 재학 중일 때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했을 정도의 리더십도 갖추고 있는 호방하고 거침없는 성품을 지니셨지만, 그때까지 술을 못하셨는데, 4.19 후 교탁 밑에 소주병을 감춰놓고 수업 중 아이들이 안 볼 때면 술을 마셨을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정서가 황폐해 갔다. 

내가 4.19 한해 전, 1959년에 그분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중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우리들에게 모자라는 부분에 대하여 과외를 해 주시면서 우리 집 형편을 잘 알고 계셨던 선생님은 내게는 무료로 해주셨고, 당신의 사범학교 동기들에게 나를 자신의 수제자라고 소개할 만큼 특별히 사랑해 주셨다. 내가 웅변을 하자, 선생님은 내게 장차 정치를 해보라고 하셨고, 내 글들을 보시고는 문학을 하라고 하는가 하면 조리 있게 발표를 할 때면 법조계로 나가라며, 대학 2학년 때까지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제자가 아니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가난에 상처받은 어린 제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무던히도 애쓰시던 선생님이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버거운 짐에 눌려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못해 대학 2학년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고, 군에서 전역하여 잠시 정치권에 머물며 길을 찾아보기도 했었지만, 학력과 금력은 예외라 해도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라는 것에 흥미를 잃어 그 역시 일찍 접어야 했다. 또 하나, 그분의 당부 중에 마지막 남은 문학에의 꿈도 내게는 사치라는 생각에 까맣게 잊고 오직 먹고사는데 열중하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등단을 권유받고 수없이 사양하다가 지나친 사양이 결례인 것 같아 쓴 작품 <자장면의 추억>이 놀랍게도 어느 문학지의 신인문학상을 맡게 됨으로써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선생님의 유지 중 하나를 이뤘다. 더욱이 등단 작품인 <자장면의 추억>은 바로 그 선생님과의 추억이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이 작고하시기 전에, 몇 번 찾아뵙고 동창들을 규합하여 어려운 형편의 선생님 돕기 운동을 하려고 시도했을 때는 제자들의 도움이 구차하셨는지 홀연히 사라져 버리셨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께서 당신이 오신 머나먼 곳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들을 수 있었다. 

꼭 선생님에게는 등단 소식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대학을 갈 길이 열렸다고 선생님 앞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 선생님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에 영원한 노스탤지어로 자리한 채 늘 스승의 날에 텅 빈 가슴을 채워 학력만큼 모자라는 나의 몇 분 안 되는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추억하게 한다. 

이전 17화 열등감(劣等感)을 떨쳐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