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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Dec 30. 2021

열등감(劣等感)을 떨쳐내다!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지각이 있는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감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富者친구를 바라보는 가난한 친구의 열등감, 미인 동창에게 보내는 질시 어린 美에 대한 여인네들의 끝없는 추구와 그로 인한 열등감, 학벌 좋은 친구가 출세하여 승승장구하는 것을 축하하지 못하고 험담을 해야 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열등감도 있을 터이다.

남보다 뒤처진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성인 같은 사람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그것은 잘난 사람들이 어깨에 힘주고 못난 사람을 경멸하기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는 氣싸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열등감은 때로는 훌륭한 약이 되어 인생역전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열등감은 자신의 못남과 무능력을 생각지 못하고 모두를 자신이 아닌 남의 탓,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인생을 자포자기한 끝에 엄청난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느 신인가수는 자신의 얼굴이 충분히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으로 수없이 성형수술을 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얼굴에 해서는 안 되는 약물을 주사해서 차마 볼 수 없는 괴물처럼 얼굴을 망가뜨려 완전히 삶 자체를 망쳐버린 경우도 있었다. 


옛 어른들은 과유불급이라 해서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이 열등감을 가져오고 그로 인하여 울고 웃는다. 스스로를 비하하여 늘 비관하는 열등감을 정신의학적으로 <Opp superiority complex> 라 하고, 반대로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고 안하무인으로 도도하게 행동하는 것도 일종의 우월감에 의한 열등감으로 <Superiority complex>라 한다. 우월 콤플렉스다.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콤플렉스 신드롬에 걸려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했거늘 성형외과가 성황을 이루는 것도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과 美를 추구하는 과욕에서 스스로 몸에 칼을 대어 선인들의 가르침을 외면한다. 


내 평생을 옥죄이고 마침내 내 삶을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도록 한 열등감은 가난으로부터 찾아왔다. 그 가난은 상급하교 진학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열등감으로 늘 자신을 학대하고 방황해야 했고, 그것은 60이 넘어 지금에 이르도록 늘 나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저 되는 대로 살겠다는,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삶으로 내 젊음을 탕진하고, 그로 인하여 내 정신세계는 황폐해갔고, 정서는 메마르고 건조해 갔다. 참으로 긴 세월을 그 열등감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죽어 살았다.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으면서도 스스로 움츠려야 했다. 어느 곳에서도 나에게 맡겨진 일은 남보다 더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못한다고 아예 포기하곤 했다. 


이제 예전보다는 그 문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난 어렵게 문단이라는 동경했던 그룹에 수필가로 입문을 했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또 마지막 순간에 포기할 뻔도 했다. 그 천형(天刑)처럼 나를 옥죄이던 열등감의 망령이 되살아났고, 좀 더 공부하라는 선배들의 충고가 두려워졌던 것이다. 고백하건대, 난 아직도 내 글에 자신이 없다. 때문에 늘 친구들에게 평가받고 싶었으나 바르게 평가해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인사치레 정도의 평이라고 믿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잠재의식 속에서 열등감은 집요하게 내 인생을 갉아먹었다. 차라리 내가 백치이기를 바랐던 때도 있었다.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의식할 줄 모르는 백치라면 괴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진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열심히 땀 흘려 내 가족을 지키며 소박한 삶에 만족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엔 내 또렷한 의식세계에서 너무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누구 하나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한 친구들이 보편적인 문명의 이기가 되어버린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데 나는 서툴지만 글을 쓸 수 있었고, 내가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컴퓨터 안에는 무한대로 널려 있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해줄 것을 바라지 않고 그 넓은 공간에 나만의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난 그들이나 조금 못 배운 나와의 격차가 좁아졌다. 해볼 만하다고 여겨졌다.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감동을 받았다고 격려해 준 것도 내게는 고무적이었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특히 대학교수나 시인 등 문인들의 격려는 천군만마의 힘이 되어 잡념을 버리고 붓을 힘주어 잡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평생을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짓누르던 열등감에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다른 이들의 편견에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 내 길을 찾았다는 것에서 늦은 만학의 문을 거침없이 두드릴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 행복해하고 신나는 일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훗날 내 무덤에 외롭게 서 있을 비석에 내 글을 한편 남기는 것으로 내가 세상을 다녀간 의미의 흔적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열등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남은 삶을 풍요롭게 다시 설계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제 자신 있게 "나는 65살의 고교생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고 보면 문단이라는 곳은 내가 글을 쓸 공간을 제공한 것 외에 내 열등감을 회수해간 신의(神醫) 같은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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