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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Dec 29. 2021

자장면의 추억

제66회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당선작_만서 홍윤기

요즘은 경제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사는 형편이 넉넉해지고 먹을 것이 풍요해졌지만 옛날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50년대나 60년대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하여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하루 세 끼니의 밥을 먹고 사는것도 대단히 힘겨웠다.

특히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감자나 보리밥, 그리고 조밥을 먹으면서 살았으며 외식문화도 없었다. 어쩌다가 외식을 할 기회가 있으면 장터국밥이 아니면 자장면이었는데 자장면은 그 시절 가장 인기 있었지만 누구나 쉽게 먹을 수는 없었다. 자장면은 결코 비싼 음식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장면은 아주 서민적이어서 오랜 세월을 통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으로 자리를 굳혀 지금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가장 선호하는 중국요리로 꼽히고 있다.


자장면은 1905년 인천 차이나 타운의 선린동 '공화춘'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미 일세기가 넘게 한국인들과 역사를 함께 했다.

세월이 그렇게 오래 흘렀지만 요즘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후에 주머니가 가벼운 부모들과 함께 추억의 음식으로 선호되는 토속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음식이다.


나는 자장면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편이며 자장면에 얽힌 특별한 나만의 추억이 있다.

내가 자장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은 1958년 겨울이었다.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에게 보충수업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들을 한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보중 수업을 받고 있는 친구들 중에서 누군가가 선생님께 수고의 보답으로 특별과외비를 내었는데, 그 돈으로 선생님이 한 턱 낸다는 것이었다.


그 음식점의 주 메뉴는 막국수와 자장면이었는데 막국수 파와 자장면 파로 갈렸다.

나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망설이다가 자장면을 선택했다. 막국수보다 이름이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때까지 자장면이 국수라는 걸 몰랐으며, 국수보다는 더 맛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래서 곧 나올 자장면에 기대를 하며 목을 길게 빼고 주방 쪽을 힐끔거렸다. 마침내 기다리던 자장면이 상위에 올려졌다. '아하 이게 자장면 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처음 보는 자장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옆에 있는 친구를 곁눈질로 슬쩍 봤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고춧가루를 검은 소스 위에 골고루 뿌린 후 나무젓가락을 양손에 한 짝씩 들고 자장면을 비빈다. 나도 짐 짓 아는 채 그를 곁눈질해가면서 그가 하는 대로 하는데, 이 친구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비비기만 하였다.

나는 그 친구의 동작을 탐색하며 '언제 먹는 거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먹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친구가 다 비볐는지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나는 비비고 어쩌고 해 봤자 그래도 자장면도 국수이니 먹는 것이 다를게 뭐람? 하는 생각으로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한 그릇을 비우고 아쉬운 젓가락을 놓고 그제야 옆 친구를 보니 그는 이제 겨우 절반 정도를 먹고 있었다.


좀 아껴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을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는데, 문득 집에서 조밥을 먹고 있을 동생들 생각이 났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향해 물었다.

"너 자장면 처음 먹어보는 거지?"

"네..."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부끄럽기도 해서 모기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자장면 처음 먹어본 소감을 말해볼래?"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당황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자장면이라는 음식을 오늘 처음 먹어봤습니다. 기름기가 많아 좀 느끼하기는 해도 제가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맛이었습니다. 그 맛에 대한 표현은 할 수 없으나, 문득 집에 있는 동생들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훅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조밥을 먹어봤습니까? 우리 집에서는 그 밥을 황금 밥이라고 부르는데, 내 동생은 모래 밥이라고 한답니다. 입에 넣으면 꼭 모레를 씹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그러면서도 투정 부리지 않고 곧잘 먹는 여섯 살짜리 내 동생과 아직 조밥을 먹기엔 너무 어려 미음을 만들어 먹이는 세 살배기 막내 동생을 생각하면 오늘 저녁 내가 먹은 자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이다음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기 계신 고마우신 선생님과 친구 여러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장면이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여러분을 생각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말을 하다가 나는 갑자기 목이 메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말을 듣고 있던 반 친구들 중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친구가 있었다. 지독히도 가난하여 먹는 것에 목숨 걸었던 우리들이었기에 내가 하는 말이 자신의 처지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난을 그렇게 숨기고 싶어 그 황금 밥 도시락을 끝내 학교에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그만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가난한 내 모습을 내 입으로 낱낱이 다 실토를 해버렸으니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만의 비밀을 말해버리고 나자 묘한 쾌감과 함께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모든 것을 술술  털어놓고, 한참을 뜻 모를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음식점을 나서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부엌 쪽에서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일까 하고 궁금증을 가진채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학생, 이거 동생들 갖다 줘."

그렇게 말하며 아주머니가 자장면을 담은 냄비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식당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학생! 이거 가져가!"

도망치듯 달아나는 나를 향해 아주머니가 외쳤지만 못 들은 척하고 그 골목을 벗어났다. 그런데 단짝 친구인 재석이가 뒤쫓아오며 나를 불렀다. 재석이는

"야! 같이 가!" 하면서 힘겹게 따라오는데, 그의 손에는 그 아주머니가 내게 주던 큰 냄비가 들려 있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나를 따라 그 친구는 그 큰 냄비를 들고 우리 집까지 따라와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이 열세 살에, 우리 누나는 스물두 살에, 내 동생들은 각각 여섯 살과 세 살에 그 자장면을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자장면을 먹을 때는 그 어린날 내가 친구들에게 말했듯이 그들을 생각하며 아득한 옛날을 회상해본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 넉넉한 인심의 자장면집 아주머니는 아직도 살아있을지... 그때 그 친구들은 어디서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을까?


자장면은 내 어릴 때의 추억을 먹는 것 같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추억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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