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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Dec 29. 2021

문패

제66회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당선작_만서 홍윤기

아주 오래전, 어느 날 고향 친구로부터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은 대다수가 그렇듯이 그 친구 역시 가난이 싫다고 혈혈단신 괴나리봇짐 하나 달랑 들고 밤 열차에 몸을 실어 무작정 상경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공사판을 전전하며 온갖 잡일을 다하다가 우연찮게 여성용 속옷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을 했는데 부레지어를 팔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손님의 가슴을 만지는 바람에 따귀를 호되게 얻어맞기도 했다.

객지에서 그렇게 온갖 고생을 다하며 이제 16년 만에 자기 소유의 집 한 채를 마련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집들이에 꼭 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가 처음 상경하던 날 밤에 잠을 잘 곳이 없어서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도 굶은 채 서울에 가면  가보려 했다는 남산에 올랐더니 눈앞에 보이는 서울 장안이 모두 집들뿐인데 자신이 누울 방한 칸 없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혀 온종일 울면서 반드시 이 서울에 내 집을 짓겠노라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 그가 나에게 집들이 초대를 했다. 그의 기분이 얼마나 황홀할 것인지 상상이 간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기를, 살기엔 아파트가 편하다고 하지만 아파트는 어쩐지 꼭 성냥갑 같기도 하고, 비둘기 집 같아서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을 마련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나름의 어쭙잖은 변명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울의 아파트는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기보다는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부를 상징하는 척도로 되어 버린 지 오래이므로 아파트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여간한 사람은 아파트를 살 엄두도 낼 수가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당연히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나가는 단독주택을 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도 그가 집을 샀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며 축하해 줄 일이었다.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고 무슨 선물을 해주어야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선물은 주는 이의 마음과 받는 이의 생각이 함께 교감할 수 있어야 좋은 선물일진대 요즘에는 그저 비싸고, 유명 메이커 제품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선물이 뇌물이 되어 버려서, 주는 사람은 경제적 부담이 되고 받는 사람은 마음에 빚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선물이 아닌 내 마음을 담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선물을 그 친구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고민을 하다가 흔히들 하는 양초나, 하이타이, 두루마리 휴지 등 상투적인 선물을 피해 나의 서정과 마음이 담긴 문패를 만들어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으나 어디 가서 문패를 만들어야 하는지 문패 만드는 가계를 찾기도 수월치 않았다. 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문패도 점점 사라지고 문패 만드는 업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이제는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대문에 손수 문패를 달며 기꺼워하던 풍경도 이제는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단독주택을 어렵사리 마련한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문패를 손수 다는 기쁨을 주고 싶었다.


나는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이리저리 헤매서 문패를 만드는 집을 찾아내어 그 친구 이름 석자가 새겨진 문패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급스럽게 포장을 하고 리본도 달았다.

잘 포장한 문패를 들고 그의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그의 집 대문 앞에 서서 문패를 어디에 달면 좋을지 그 위치를 정해 놓고 밖에서 호기롭게 소리쳤다.

"이리 오너라!"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다른 집에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침을 뚝 떼고 서있자니 친구가 나왔다. 어서 오라고 반기는 그에게 망치와 콘크리트 못을 내오라고 하면서 준비해 간 선물을 내놓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망치를 찾느냐는 듯 의아하게 나를 보며, 포장을 뜯던 그가 내가 준 선물이 문패임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들어가 망치를 찾아들고 나왔다.

문패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지 친구는 "이 집 자네가 반은 사준 거야"라면서 함박웃음을 웃었다.


이젠 그 문패들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집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내가 선물한 대리석 문패가 최후의 수호신처럼 그 집 대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세상은 늘 그렇게 변해가고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들은 어느덧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그리움을 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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