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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Dec 29. 2021

천상의 부모님 전 상서

홍윤기 수필집 "예순다섯 살의 고교생"_만서 홍윤기

어머니, 아버지!!!

어버이날이 저물어 갑니다. 해마다 오늘만은 대단한 효자, 효녀들이 그 효행을 뽐내는 날인가 봅니다. 

평시에 하지 못했던 孝를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북새통을 칩니다. 그나마 안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이들이 사람들 같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늘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늘 하루에 시작하고 하루로 끝내는 것이 현실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로 보이기는 합니다.

그저 평상시에 조금 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했더라면 이 못난 사람처럼 후회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입니다. 이제 그것을 깨달았으니, 이놈 참 어지간하게 둔한 놈이었습니다. 얼마나 이놈이 야속하셨습니까?


아이들이 저녁은 외식을 하자는 전화를 받으니 문득 하늘가 신 두 분이 그리워집니다. 어머니 가시면서 제게 보여 주시던 진주처럼 곱고 맑은 한 방울의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이 못난 놈을 바라보시던 눈길엔 애잔한 슬픔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도 아주 최근에 생각해냈습니다. 불초 소자가 어찌 당신의 깊은 속을 안다고 하리오만은 부모님 가슴에 恨으로 남아서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과 "휴, 너를 조금 더 가르쳤더라면..."하시는 독백과 함께 찍어 내던 그 눈물과 같은 의미의 마지막 눈물을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이젠 그런 恨을 풀어버리셔도 됩니다. 어머니의 恨이 제게도 恨이 되었기에 지금 조금은 늦었지만 학교라는 곳엘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부모님 때문이라며 제 스스로의 아픔을 어머니의 恨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고 에둘러 변명하면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어머니께서 그곳으로 가신지 다섯 해가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세상을 탓하기만 했었지 돌파구를 찾을 생각을 못했던 무지(無知)가 젊은 날 보지 못했던 길을 이제 겨우 찾은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 생전의 한이 그 길을 찾아 주신 것 같습니다.

뒤늦은 후회를 하면 무엇합니까만, 그 잘못으로 인하여 또 하나의 恨이 생겼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이미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난 뒤가 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일찍, 아니 어머니가 조금만 더 이놈과 약속하신 대로 100세를 채워 주셨더라면 "어머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는 당신의  귀한 자식의 인사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운명이 너무 야속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방과 후에 삼삼오오 빵집에 들르듯이 우린 그 시간에 참새 방앗간 같은 주점에 둘러앉아 한잔 술을 나누며 만학(晩學)의 또 다른 멋과 고등학생으로서의 보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얼큰해져 돌아와서 어머니 쓰시던 그 방, 두 분 초상화 앞에서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 어멈이 질색을 합니다. 아마 이웃 보기가 민망해서 일 겁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제 당신의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글 잘 쓰는 문장가가 되기를 그렇게 원하셨던 두 분의 바람대로 당당하게 문인이 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 잃어버렸던 학교 가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글을 남기고 부모님 계시는 곳, 내가 본래 왔던 그곳으로 자랑스럽게 돌아가겠습니다.

앞으로 내게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 남은 세월만큼 열심히 살다 가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생전처럼 또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세월을 멈추게 해 달라는 무리한 부탁은 소자 지은 죄가 커서 감히 드리지 못하오나, 제 할 일 다 할 때까지 하늘이 불러 두 분께 돌아갈 그날까지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꼭! 지켜보소서. 

아버지, 어머니 꿈길에서라도 뵙고 싶습니다.


2012년 어버이날을 보내며

아버지, 어머니 초상화 아래에서 不孝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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