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노력하세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2편은 언제 나오나요?', '잘 읽었습니다!'
_ 아... 제발
언니는 내 습작노트에 정성 들여 답글을 달아 놓았다. 혹여라도 내가 자신의 코멘트를 보지 못할까 봐 알록달록 색칠까지 해 놓았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나의 첫 독자는 공교롭게도 사이가 좋지 않던 언니였다. 언니는 책을 많이 읽는 문학소녀였다. 언니는 주로 고전명작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는데, 어린 시절 언니가 하는 일이라곤 용돈을 모아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고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으로 바꿔오는 일이었다. 그런 언니가 내가 쓴 시답잖은 에세이를 읽고 코멘트까지 남기다니 참 정성이었다. 급기야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글머리에 늘 '언니 보여주려고 쓴 글 아님'이라는 글을 언니가 하던 대로 알록달록하게 써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니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나의 독자였고, 엄마의 첩자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습작노트를 펼치지 않았다. 나는 독자나 첩자 같은 건 원한적이 없었다.
내가 원할 때 작가가 되고 싶어
습작노트의 글은 아직 발행하지 못한 글과 같다. 지금도 글을 발행하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글을 수정하는데 그 노트의 글들은 얼마나 쓰레기 같았을까. 헤밍웨이도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초고도 아닌 미처 발행하지도 못한 작가지망생의 습작노트의 수준은 알만했다. 나는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해성처럼 등장한 유망한 젊은 작가가 내 꿈이었다.
그런 내가SNS에 글을 발행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용기를 냈음에도 한동안 구독자가 거의 없었고, 나는 유망한 작가가 아닌 부끄러운 작가가 될 것만 같았다. 글을 발행한 지 4일 만에 첫 구독자가 생겼는데, 나는 내 계정을 처음으로 구독한 그 아이디를 수첩에 고이 적어두었다. 영광스러운 첫 구독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SNS구독자가 4천 명이 되었을 때 나는 첫번째 책을 출간했고 첫 구독자를 애타게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계정은 휴면 상태였다. 내 첫 구독자였던 그가 이제 나를 구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독자를 원하지 않을 땐 무수히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정작 독자가 필요할 땐 곁에 없었다.살면서 원하는 걸 원할 때 가질 수 있는 건 축복받은 자만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겐 진정한 나의 첫 독자인 언니가 있었다.언니는 내가 원하지 않을 때나 원할 때나 나의 독자가 돼주었다. 그러니 아직 실패한 게 아니다. 비록 문학소녀답게 글에 대한 평가는 아주 부정적이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나는 내 SNS의 첫 구독자를 찾아 첫번째 책을 선물했다. 그는 다른 계정으로 내 글을 읽고 있었다.내가 글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에도, 글 쓰는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그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내 첫 독자인 그들이 원하는 건 잘 쓰인 글이 아니라 실수투성이 쓰레기 같지만진실된 글이었다.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나는 영영 작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잘 닦여있는 산간 도로는 예전에 누군가 허접하게 만든 작은 오솔길이었다. 처음부터 잘 닦아놓은 길은 없다.
잘 넘어지는 법
스키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넘어지는 법이다. 태권도나 유도도 마찬가지다. 어느 운동이나 잘 넘어져야 잘 일어날 수 있다. 처음 스키를 배울 때는 넘어지는 게 두렵다. 넘어지는 건 꼭 실패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나보다 더 잘 타는 사람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고 잘 탄 건 아닐 거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넘어지고도 또 일어나 걷는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준비가 된 후에 걸을 수 있게 아이를 주저앉히는 게 아니라 잘 넘어지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날 용기를 갖게 독려하는 일이다.
자꾸만 넘어져도 잘 넘어지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나는 또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을 거두고 자꾸만 다시 일어날 때이다. 세상엔 내가 작가인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니 얼마나 희망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