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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누구나 한 번쯤은 호더스가 된다

by 김소연 Sep 10. 2023



#06. 누구나 한 번쯤은 호더스가 된다





결핍은 집착을 만든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친구들은 모두 비슷한 구석이 는데, 서로가 존중하는 우리 이야기 각자의 취미생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주로 무언가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이십 대의 주된 화두는 쇼핑 중독이었다.



_ 야. 우리 소연이 패션 많이 죽었네. 맨날 화려한 옷만 입고 다니더니 그 옷은 대체 어디서 산 거야?


_ 응. 바지는 딸이 작아서 버린 거고, 티셔츠는 아들이 안 입는다고 버린 옷. 다 그렇지 뭐. 내 옷 살 돈이 어딨어?


_ 아니 저번에 산 옷 있잖아?


_ 그건 아껴뒀다가 중요한 일 있을 때 입어야지.



 그랬다. 정말 돈이 없는 게 아닌데도 늘 쇼핑목록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다. 요즘 나를 위해 하는 투자라곤 문화비용이 전부다. 그래도 좋아하던 뮤지컬과 콘서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 나 자신에게도 꽤나 투자하는 셈 아닌가? 꼭 필요치 않은 모품은 그저 소모하지 않는 게 이득이다.



 이십 대 시절 옷장엔 늘 옷이 한가득이었고 나는 쇼핑을 할 때마다 엄마에게 들킬세라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엄마는 맨날 옷을 왜 사 오냐고 타박을 했지만 나는 멈출 줄을 몰랐다. 새 옷을 사다가 내 방의 작은 옷장에 다 넣기 어려워지면 언니 방에 몰래 가져다 놓기 일쑤였다. 당연히 언니 방에 넣은 옷들은 언니의 차지가 됐고, 또 다른 옷을 사기 위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쇼핑은 끝나지 않았다. 그때의 목표는 남들보다 많은 옷을 갖는 거였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옷을 사주지 않았고, 학교에 입고 다닐 터틀넥 니트도 다 늘어나 헤질 때까지 입어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때 내가 짜낸 궁여지책은 책 값을 받아 몰래 옷을 사는 거였다. 늘 아끼는 게 목표인 엄마에게 돈이 나올 구멍은 책값뿐이었다. 그러니 새로 산 옷은  가방 구석에 구겨져 있었고, 나는 친구들이 다 푼 문제집을 받아왔다. 그런 생활은 대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생일 때 나는 옷을 사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호더스가 된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구두를 모았다. 어느 날 그녀의 집 신발장에 쌓여있는 똑같이 생긴 구두들을 보고서 놀란 나는 그녀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 권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비슷한 구두가 자꾸 자기 눈에 띈다고 했다. 그녀에게 한번 눈에 띈 구두는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그녀는 그녀와 닮은 그 구두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무언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실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로 인해 나를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 아닐까. 어쩌면 인생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호더스가 된다. 그건 그녀의 말처럼 치유의 과정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건 늘 무언가에 집착하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가로던 한 친구였다. 그녀는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호더스가 돼있었다. 그녀는 우리와는 달리 주방용품을 모았다. 그녀는 마치 요리 블로그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예쁜 그릇과 그릇 거치대, 요리도구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요리실력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언젠가 그녀는 예쁜 튀김 트레이를 사더니 튀김을 한두 번 해 먹고는 그 트레이를 손이 닿지 않는 주방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걸 닦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수납바구니들을 크기별로 모았는데 그녀의 집 수납장 안엔 수납바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살림의 달인이라도 될 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시어머니가 집에 방문해서 서랍을 열어보시려 해서 깜짝 놀라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고 했는데, 그녀의 서랍은 그녀가 가진 수납바구니들로도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언제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수납바구니를 들고 와 정리를 깔끔히 할 수 있다. 그럴 희망이 있다. 그게 그녀가 수납바구니를 모으는 이유였다.



 나는 누군가를 날 일도 별로 없 맨날 집에만 처박혀 있지만, 내가 가진 예쁜 옷과 장신구도 언젠가 쓰일 거다. 그녀가 가진 튀김 트레이와 수납바구니도 언젠가는 쓰이겠지. 쓰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상품이 나오면 또 살 수 있으니 참 좋다.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상황이 마음에 든다. 도무지 일이 생기지 않아 입을 일이 없는 그 옷과 수십 켤레의 구두, 언젠가 요리 블로거가 될지도 모르는 그녀의 튀김 트레이 조리 도구. 그게 우리세상에 가진 희망이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모으는 건 아마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는 그들이 가진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호더스가 된다. 그게 바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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