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생체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독일의 귀족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 사이트에서 보여준 나의 전생 사진은 지금의 나와 너무 닮아 있었고 나는 그것만으로 그것을 신뢰했다. 전생에 나는 부잣집에 시집간 귀족 여인이었으나 그 당시에 귀족 여인이 관심 갖지 않아야 할 봉사활동에 심취해 밤늦게까지 집 밖에 자주 머물렀으며 예쁜 드레스에 흙탕물을 묻히기 일쑤였다. 결국 부인의 외부활동이 싫었던 남편의 눈 밖에 나남편에게 버림받고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이생의 남편은 그 당시에 나를 흠모하던 노예였으며 그 사랑이 깊어 이생에 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결론은 이러했다. 나를 짝사랑했던 그 노예의 소원은 결국 이뤄졌지만, 나의 사랑을 갈구했던 그의 전생의 한으로 인해 나는 이생에서 절대로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때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말이다. 그건 단순히 단돈 오천 원을 투자해 할 수 있는 전생체험이니 신빙성이 있을 리 없다고.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엔결국 그 전생 체험을 믿게 되었다. 신혼 초부터 남편과 나는 서로 헤어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이였다.늘 그는 나와의 시간의 한계를 정해두었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나를 떠났다.
사실 이건 전생체험이 아니라 그 사이트에서 내 사주팔자를 고려해 만들어낸 소설 같은 거였다. 어차피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였다. 사람들의 미신을 대하는 심리는 극단적으로 두 가지 중 하나다. 미신이라 불리는 그것들을 맹신하거나, 혐오하거나. 만약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받았다면, 지금 자신이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저주의 메시지 때문 일 거라 탓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미신을 혐오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건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그 전생체험 이후부터 명리학에 관심을 가졌고, 지금은 타로를 공부 중이다. 내가 그것들을 배움으로써 하고자 했던 건 미신 같은 건 다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였지만, 결국 아직 그걸해내지 못했다.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수록 긍정에 가까워졌으며 나는 운명을 믿는 운명론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미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 미신을 맹신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희망을 발견하려는 사람, 미신을 혐오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절망을 부정하려는 사람이다. 결국 긍정과 부정이 서로의 반대말인 게 아니라, 긍정, 부정 모두의 반대말은 무관심으로 귀결된다는 거다.
SNS는 인생의 낭비
SNS에서 사람들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본다. 누군가의 자랑거리는 누군가의 열등감이 된다. 단지 내가 부러워하는 건 누군가의 슈퍼카나 명품이 아니라 어느 화목한 가정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아. 저 집에는 밤늦은 시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등 떠밀어 술을 사러 가는 어린아이는 없었을 거야.아마 저들은 사는 내내 행복하고 사는 내내 서로 아껴주며 사랑했겠지. 전생도 아주 훌륭했을 거야.삶에 부정적인 운명론자가 된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보며 내 결핍에 대해 생각했고, 불행했다. 늘 결핍되었던 감정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행복이라는 건 경제적인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SNS에 올라오는 경제적 안정에 대해 높은 욕구를 보이는 자는 아마 다른 감정적인 결핍이 있었을 거다. 행복해 보이려는 의도,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의도는 결핍된 감정에서 나온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랑을 받고 자란 이는 사랑을 주는 이가 된다. 그런 끊임없는 순환이 불안할 뿐이다.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아니라 내 후대에도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래서 결국 누군가에게 원망을 듣거나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그게 다였다. 이미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있으며, 내 아이들은 특이체질이라 내 사랑 같은 건 필요 없는 완전한 인간이 되길 바랐다.
내 친구는 바나나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었다. 바나나는 열대과일이라서 차가운 공기가 닿으면 갈변이 된다는 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언젠가 나는 냉장고에 넣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어 그녀에게 전했다. 당연히 그중에 바나나를 가장 먼저 적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차가운 바나나가 더 좋았던 것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그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삶은 이상하게도 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누군가 사랑을 고백할 때는 도망가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떠나려 할 때는 붙잡고 싶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안에서 그녀처럼 조금 다른 걸 좋아해도 괜찮다. 냉장고에 넣어둔 갈변된 바나나는 썩은 게 아니라 그저 색만 변한 거라고. 그건 틀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