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전 세계에서 음식이 가장 맛없기로 유명하다. 영국 사람들도 그걸 개그소재로 쓰는 걸 보면 그들의 생각도 같을 거다. 영국의 대표 음식은 피시앤칩스와 또, 피시앤칩스뿐이다. 중국처럼 튀긴 음식이 주요 메뉴인걸 보면 영국의 수질은 중국만큼 좋지 않다는 거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건 물이 아닐까. 우리나라 음식이 맛있는 건 다 물이 맑기 때문이다.
영국의 땅의 모양은 우리나라와 꼭 닮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은데, 그건 바로 물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영국의 물에는 석회의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설거지를 할 때에도 비누거품을 물에 헹구지 않고 마른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낸다고 한다. 샤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국인들이 올린 설거지하는 영상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은 그걸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고 그릇에 남은 잔류세제 때문에 탈이 난 사람도 없을 테니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설거지를 할 때 중요한 건 깨끗한 물이 아니다
빨래를 할 때도 걸레질을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건 깨끗한 물이다. 신혼 초에 살던 집은 녹물이 나오는 오래된 빌라였는데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먹은 날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하면 늘 빨간 자국이 묻어 나왔다. 만약 내가 그때 영국식 설거지에 대해 알았다면 어땠을까. 과연 나는 영국식 설거지를 할 수 있었을까?
내 지인은 거의 매일 바뀌지도 않을 말들을 내뱉는다. 내가 다른 가정에서 많은 책을 읽고 자랐다면 내 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그가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과연 그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
나는 만약이라는 말이 조금 두렵다. 나 자신을 바꿀 만한 용기가 없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올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만약이라는 말과 함께 바뀔 내 상황에 대해 말한다면, 그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거다. 어차피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바꿀수 있는 일은 드물 테니 말이다. 물이 깨끗한 나라에서는 물로 깨끗이 그릇을 헹구고, 물이 더러운 나라에서는 마른 수건으로 꼼꼼히 닦으면 된다. 세상엔 불평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