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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와이드팬츠를 입고 멋있어질 확률

by 김소연



#10. 와이드팬츠를 입고 멋있어질 확률





내가 멋있어질 확률




_ 엄마 이거 예쁘지?


_ 이런 걸 입고 다니려고? 그런 옷은 모델들이나 입는 거지.


_ 엄마는 유행을 모른다니까!


_ 그럴리가.



와이드팬츠를 사달라는 아이에게 너는 모델이 아니라며 쓴소리를 했다. 그리곤 아이가 하던 대로 일자바지를 찾아 보여줬다. 누구에게나 체형에 맞는 옷이 가장 예쁜 옷이다. 여자 아이돌들의 무대의상을 보면 그중에서 가장 날씬하고 다리가 긴 아이들은 바지를 입고 다리가 굵고 키가 작은 아이들은 치마를 입는다. 그래야 같은 그룹 내에서 외모의 발란스를 맞출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꼰대일 확률이 높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꼰대는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HOT





내가 내 아이 또래였던 삼십 년 전에도 와이드팬츠가 유행이었다. 그때는 힙합바지라 불렸다. 엄마들은 와이드팬츠를 입은 HOT를 보며 귀신이라도 본 듯 아연실색했다. 저런 옷은 무대에서나 입는 옷일 거라는, 저런 옷을 밖에서 입을 리가 없다는 엄마들의 우려에도 아이들은 너도나도 당당하게 와이드팬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고 엄마들은 절망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와이드팬츠를 입고 외출한 날에는 현관문 앞에서 바지를 벗겼다.



패션을 잘 모를 때는 유행을 따라 하는 게 멋있어질 확률이 높다. 대기업에서 좋은 학벌을 선호하는 것도 바로 확률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은 성실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확률이라는 건 어렵고 높은 기준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수능 킬러문제의 경우엔 정답률이 1% 미만인 것도 있으니 범한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은 정답이 아닐 확률이 높은 것이다. 군다나 수능문제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각자의 인생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쓴맛 중독자는 사이코패스라던데




_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대. 너 쓴맛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_ 그래서? 내가 사이코패스라는 거야?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는 정보를 들은 어떤 친구는 마치 내가 사이코패스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는 매운맛과 쓴맛이 전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나는 자극적인 걸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아니야. 나 고소한 맛도 좋아해. 단맛과 신맛을 싫어하는 것뿐이야.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고 있다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확률이라며? 그건 확률일 뿐이지 않은가. 정말 확률일 뿐일까 잠시 고민에 휩싸였지만,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니 아마도 잘못된 통계임이 분명했다. 선호하는 맛과 사람의 성향이 관련 있을리 없다. 생각해 보니 통계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확률은 100%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쓴맛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률을 신뢰하고, 변명하는 걸 싫어한다.





다수의 의견이 정의가 될 순 없다




어느 날 아이는 유전적으로는 쌍꺼풀이 우성이라며 나의 짙은 쌍꺼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내 짙은 쌍꺼풀이 싫은 사람이라며 아이에게 내 돌쟁이 었던 시절 사진을 보여주자 이제 쌍꺼풀이 없는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확률상으로는 꺼풀이 있을 확률이 더 높아야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쌍꺼풀이 없다. 60%의 확률이 정확히 맞으려면 앞으로 세 명을 더 낳을때 그 아이들이 모두 쌍꺼풀이 있어야 한다. 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이다. 이들과 나를 번갈아보며 내 쌍꺼풀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도, 쌍꺼풀이 있어야 예쁘다는 사람들이 많아도. 다수의 의견은 정의가 될 수 없다. 각자의 정의는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어른이 된 나는 내 아이가 와이드팬츠를 입는 게 싫다. 지만 그걸 입고 행복해진다면 입어야지. 내가 예전에 그걸 입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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