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컴퓨터를 꽤나 잘 다루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수리는 물론 코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인 20여 년 전에 HTML 코딩 관련 책을 한 권 사서 독학으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홈페이지를 만들다가 컴퓨터 한 대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도 있었는데, 컴퓨터를 잘 아는 혹자는 컴퓨터 한 두대는 날려먹어야 실력이 느는 거라며 나를 독려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에 입학할 때 컴퓨터공학과와 도예과 중에 도예과를 선택한 게 참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웹디자인을 배우고 그 일을 하면서 컴퓨터와 관련된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과 먹고살려고 하는 일은 참 많이 다르다.
나는 지긋지긋했던 그 일을 그만두고선 컴퓨터를 한쪽으로 밀어두었다가 그마저도 보기 싫어 결국 내다 버렸다. 그 이후에 노트북 두대를 샀는데 그나마도 성능이 좋은 웹디자인 프로그램 작동이 가능한 노트북은 구석에 처박아 두고 글을 쓸 때 필요한 한글프로그램과 메일을 보낼 수 있는 보급형 노트북 한대만 쓰기 시작했다. 내가 고성능 노트북을 산건 순전히 웹디자인 프로그램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였지만 나는 노트북으로 포토샵 프로그램에 거의 접속하지 않았다. 디지털에 흥미 있었던 나는 점점 퇴화되어 이제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소음이 심한 고성능 노트북은 값싼 보급형 노트북보다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
요즘 내가 노트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메일함을 살펴보는 거다. 메일의 대부분은 굳이 읽을 필요 없는 보험료 납입 내역이나 차량이용 리포트, 또 내가 출간한 출판사에서 한 달에 한번 오는 소식지나 나의 허락도 받지 않은 광고가 대부분이지만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건 어느 출판사의 출간 거절 메일이다. 보통 출간 거절 메일은 아주 형식적이지만 간혹 내 글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아주 친절히 알려주는 출판사도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거절의 내용이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기까지 수많은 번뇌에 빠지고선 할 일을 끝마치면 미련 없이 곧장 노트북을 닫아버린다. 그러니 당연히 내 메일함은 수천수만의 읽지 않은 메일이 쌓여있다.
노트북을 닫기에 급급해 불필요한 메일을 정리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꼴이 조금 우습다. 컴퓨터 화면만 보면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온라인으로 오는 메일은 집 우편함에 쌓인 우편물보다 더 낫다.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내가 어느 날 보게 된 집 우편함에서는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를 우편물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지만 메일함은 수신한 시각의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으니 내가 어디까지 확인했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은가.확인을 꼼꼼히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체 메일 지우기 버튼을 누를 수는 없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놓친 메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나의 메일함은 안전할까.
인테리어의 기본은 가림막이 아니라 정리된 수납공간
자칭 미니멀리스트 타칭 맥시멈리스트.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기준을 가졌다. 무언가를 사지도 않지만 무언가를 버리지도 못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기준. 내 공간엔 불필요한 물건도 없지만 꼭 필요한 물건도 없는 경우가 많다. 내 삶의 공간은 아주 비능률적으로 불필요하게 늘어져있다. 무언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맞아. 그거 집에 있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미니멀과 맥시멈의 사이의 어디쯤이다.
참 이상한 건 정말 꼭 필요해서 그 물건을 산다면, 사고 나서 같은 물건을 집안 어디에선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는 거다. 그럴 땐 가리기에 급급해서 아무렇게나 처박아 둔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건 보물이 아니다. 새 물건을 사기 전엔 보물이었겠지만, 이미 새 물건을 사고 난 후엔 고물일 뿐이다. 내 눈을 가려버린 실제 가림막과 내 마음이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가림막은 멀쩡한 물건을 고물로 만든다. 과연 내 통장 잔고와 집의 물건들은 안전할까.
일 년 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기
언젠가 나는 티브이에 출연한 정리의 달인에게서 일 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버리라는 말을 들었다. 맞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내가 일 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이라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쓰이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헌데 정리를 하려고 보면 올해는 쓰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쓰지 않을지 기대가 되는 물건들이 있다. 철 지난 하늘거리는 예쁜 원피스는 올해는 뚱뚱해 보여 못 입었지만 내년에는 살을 빼서 입어야겠다는 망상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거의 삼십 년간 같은 몸무게를 유지 중이고, 그나마 나잇살 때문에 허리둘레가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 내 삶이 갑자기 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아주 많은 물건들 속에서,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옷을 가졌다고 한꺼번에 많은 옷을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많은 것들은 짐이 된다. 나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젠 조금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