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은 오십 살이 되어야 걸리는 병인 줄 알았다. 아직 오십 살이 되려면 오 년이나 남았는데 나는 벌써 오십견에 걸렸다.
스무 살에는 대학에 가야 하고, 서른 살엔 어른이 되어야 하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는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어야 하고, 오십 살이 되어서는 안정된 자산이 있어야 한다. 나는 아직 오십이 되지 않았지만 지나온 것들로 볼 때 대부분의 나이에 맞는 것들을 이루지 못한 내가 오십이 되어 갑자기 안정적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들은 참 서글펐다. 그래서 오십이 되기 전에 이미 그 나이를 체험하게 된 것 아닐까. 어느 하나라도 미리 이루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게 비록 시련일지라도 말이다.
시련은 늘 너무도 쉽고 빠르게 온다. 내가 내내 원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는 늘 천천히 찾아오면서 너무 한 것 아닌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팔을 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잠을 잘못 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내일이 되면 낫겠지 했다가 그다음 날 낫지 않자 아마 일주일이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근 6개월째 낫지 않았고, 나는 그 기간 동안 유튜브를 틀어놓고 오십견 교정치료 운동 중이다. 내가 사는 내내 팔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한건 처음일 거다. 나도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내가 열심히 하는 일들에선 성과가 쉽게 나지 않는다. 오십견에 걸린 건 예고도 없이 한순간이었지만 회복하는 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순간의 실수로 범죄자가 되든, 한순간의 원전 폭발 사고로 내내 기피지역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처럼 말이다.
출처 네이버
언제 나을지 모르는 두려움에도
시련이 왔을 때 가장 두려운 건 언제 나을지 모르는 막막한 심정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다고 시간의 굴레에 갇혀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해결해야 할 때 촉박한 시간은 독이 된다. 처음에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 올리려다가 한동안 고생을 했다. 내가 원했던 건 그저 빠른 회복이었다. 오십견 운동 중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은 시계추 운동이다. 억지로 뼈를 제자리에 놓는 운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도록 살살 달래주는 운동이 필요한 거다. 시계추 운동은 중력에 내 팔을 맡기는 운동이다. 팔을 쭉 뻗어 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의 이치에 맡기는 것. 모든 일에는 자연스러운 미덕이 필요하다.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과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몸. 그게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나는 제 자리를 찾는 중이다
나는 아주 천천히 내 자리를 찾고 있다. 비록 내 오십견처럼 내 뼈가 제자리를 찾을 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아니면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제자리를 찾을 거다. 나는 노력 중이니까. 그러니 나는 하릴없이 나이만 든 내 몸을 원망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