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는 이사를 참 많이 한다. 그 이사비용과 각종 집기 구입비용만 아꼈어도 집 한 채는 샀겠다며 엄마는 이제 그만 정착하라며 잔소리를 한다. 늘 깔끔한 엄마는 이왕이면 새 아파트가 낫겠다고 했지만, 새 아파트에 입주한다고 해도 입주청소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어디든 처음 가는 곳은 입주청소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이별하고 처음 만날 때 마음 정리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사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그 집에 하자는 없는지, 햇볕은 잘 드는지, 윗집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지는 않는지, 또 아랫집에서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지를 다 따지다 보면 내 마음에 드는 집은 별로 없었다.공동주택에 살다 보면 이것저것 따질게 많은데 어떻게 한 곳에 계속 살 수가 있을까. 처음엔 이사할 때마다 집을 사고팔다가 집을 사고 파는데 드는 세금을 생각하면 차라리 전세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서 늘 내 집이 있어야 서럽지 않다고 말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어서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때까지 내 집이 좋다는 건 순전히 엄마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남의 집에 이사를 하면서 뭐가 좋냐고 물었지만, 남의 집에 세를 산다고 해서 이사가 설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집주인이 입주청소까지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나처럼 청소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면 정기적인 청소가 될 테니 꽤나 긍정적이다. 그리고 언제든 집이 싫증 나면 홀가분하게 새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연인이나 집이나 떠날 때를 알면 미련 없이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다.나는 이사를 할 때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지만 엄마의 말처럼 정착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돌아보면 엄마의 말은 늘 옳았다. 삼 년 전쯤 살던 아파트에서나도 모르는 새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를 나왔다.새로운 집이 엄마의 말처럼 새 아파트였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근처에 낡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오래된 아파트에 살다 보면 금세 싫증이 난다. 하지만, 언제든 떠날 수는 없다. 내가 해야 하는 건 내 것이 되지 않게 싫은 걸 선택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 것이 될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가 말한 책임감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선택한 것에서부터 나온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삼 년 째고 나는 집에 슬슬 싫증이 나고 있지만 당분간은 이사가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집안 정리는 당분간 없다. 아래층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담배냄새도 이제 꾹 참아야 한다.
인생이란, 아주 좁은 틈으로 들어온 먼지들을 쳐내는 과정이다
새집이라고 쌓인 먼지가 없는 건 아니다. 이상하게도 먼지는 닫힌 창문 틈으로 들어온다. 한여름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벌레처럼 긍정적이지 않은 것들은 굳이 넓은 세상을 두고 좁은 틈으로 들어온다. 왜 그것들은 초대하지 않은 공간으로 꾸역꾸역 들어올까. 왜 그들은 집주인에게 최소한의 동의도 얻지 않는 걸까. 우리는 언제든 초대받지 않은 것들과 동거를 해야 한다. 내 허락을 받지 않은 걱정거리는 늘 내 머릿속을 괴롭히고 쫓아내려 해도 쫓을 수 없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든 그 집이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마찬가지다. 어디든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찾는 건 너무 어렵다.
내 집이 있으면 행복할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행복할까. 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찾아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았다.우물에 갇힌 개구리는 안정적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칠 천적은 그곳에 없다.그래서 나는 안정적인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숨는다. 이제 나를 내쫓을 집주인은 없다. 하지만 그와 함께 청소도 새집으로 이사 갈 희망도 없다. 그들처럼 우리의 삶은 내가 본 세상이 전부다. 우리가 상상하는 건 대부분 실제로 현실 가능한 것들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든 우물이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제든나는 내 우물에서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