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거울을 보는 시간이 줄었다.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나고 머리카락에 새치가 자라나게 되면서부터 거울을 보는 일은 나의 자존감을 떨어지게 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늘 죽고 다시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의 몸에서는 몸에 꼭 필요한 세포와 함께 암세포를 만들어내고 죽이는 과정을 반복한다.나이가 들수록 세포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더 많은 세포들이 퇴화되기 때문에 노령의 암환자는 쉽게 회복이 된단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몸은 노화되면서 주름이 생기고키가 줄어들고, 몸구석구석에 고장이나기 시작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나타내는 성호르몬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늘 같은 양으로 분비된다면 주름도 기미도, 탈모도 생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건 세상에 없다. 몸의 변화보다 더 빠른 건 마음의 변화였다. 마음의 변화에는 항산화제도 소용없었다.
넌 참 한결같구나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바라는 건 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오래된 연인이 되어 소원해지는 마음이 아니라 결혼한 지 십 년 이십 년이 되어도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도 함께 사랑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다. 늘 변함없을 믿음을 갖는 것,그게 바로 사랑일 거다. 나는 성장이 멈추었던 삼십 년 전부터 지금 까지 늘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몸무게가 급속히 늘어나기 전까지 늘한결같은 항상성은 내게 긍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내가 이제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항상성을 가지기 시작했고, 늘 한결같다는 말은 아주 비관적인 말이 되었다.
늘 한결같은 건 참 비관적인 일이다. 게으른 자에게는 항상 같은 상황이 축복이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는 아주 절망적이지 않은가.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어긋난 사람과의 관계처럼 늘 제자리를 맴도는 항상성이라는 건 참 몹쓸 경험이었다. 최근 몇 년간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던 나는 내 몸이 기억하는 무게에 절망했다. 다이어트를 성공하기 위한 최대 난관은 몸의 항상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속도에 한계가 오는 시점이 있다. 땀 흘려 운동을 해도 하루종일 굶어도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그때는 정말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 내 몸은 변덕스러운 외부의 상황에도 늘 같은 상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는 중인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살을 더 빨리 빼기 위해 점점 더 적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그럴수록 기초대사량이 줄어들어 점점 더 살이 찌는 체질이 된다. 다이어트를 할 때 가장 비관적인 건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늘 한결같은 몸과 마음이었다.
밤에 잠들어 아침까지 깨지 않는다면
뇌에서 분비되는 각성세포의 유효시간은 한 시간 반이다. 우리가 깨어있으려면 각성세포가 분비되고 나서 한 시간 반이 지나기 전에 또 다른 각성세포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세포는 하루에 만들어낼 수 있는 총량이 있다. 그래서 그 전날 밤을 새면 그다음 날 만들어낼 각성세포가 줄어 피곤해진다. 만약 각성세포가 어느 한 날에만 모자란 게 아니라 늘 부족하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분비되는 각성세포를 낮에만 분비하도록 잘 조절하지만 불면증 환자의 경우엔 밤에도 분비된다. 그래서 낮에 피곤하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기면증 환자의 경우에는 아예 각성세포를 분비하는 체계가 고장이 나서 하루에 생산될 각성세포를 고르게 같은 시간의 간격으로 분비한다. 그래서 낮이든 밤이든 늘 각성과 수면의 경계에 있다. 각성세포의 유효시간은 한 시간 반이고, 기면증환자는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는 이상 자력으로 한 시간 반 이상 잘 수 없다.
기면증 환자의 삶을 체험하고 싶다면 한 시간 반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 놓으면 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주일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 될거다. 항상성은 이렇게 무서운 거다.
나의 꿈은 꿈을 꾸지 않는 거였다. 내가 밤에 잠들어 아침까지 깨지 않는다면 나는 꿈을 꾸지 않겠지. 친구들이 거창한 꿈을 꿀 때 나는 고작 이런 평범한 꿈을 꿨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은 누군가에겐 이루지 못할 꿈이 된다.
그런다고 삶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에 항상성은 꼭 필요한 가치 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항상성은 늘 그렇듯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는 마음이 있다. 그건 연어가 알을 낳을 자리를 찾아 물살을 거스르는 것처럼, 늘 한결같은 절망 속에서 그대로 흘러갈 수만은 없어서.누군가의 뜻대로 흘러가지 말고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신의 큰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는 내내 늘 같은 절망에 익숙해져 이제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 그래서 절망속에서도 늘 고요한 항상성을 유지하는 중이다.나의 항상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