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작가는 자신의 글로 인해 상처받을 누군가의 걱정뿐이다. 상처받은 쪽이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에게 해가 될까 전정 긍긍하는 경우도 흔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든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든 꺼내어 놓아야 치유가 된다. 숨기는 것은 오로지 통장잔고일 정도로 탈탈 털어놓아도 될 만큼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가 쓴 불만 가득한 글을 읽으면 '이 작가는 너무 부정적이야.'라든지, '이렇게 사회에 불만이 많으면 곁에 있는 사람은 참 힘들겠다.'라고 의미 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때론 그 글을 쓴 작가가 내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심도 했을 거다. 하지만그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지인이 아닐 거라는 단정은 하지 말자. 가명으로 활동하는 작가도 많고, 때론 생면부지인 작가에게 몰입되어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인 것 같은 일도 흔하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은 표현하지 않는 아픔에 관한 것이다. 쓰지 않는다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닐 테고, 불만 가득한 글을 쓴다고 실제 생활이 우울하거나 막장은 아닐 거다. 생각을 꼭꼭 숨겨두고 아닌 척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겉으로 밝은 사람에게 좋은 건 당사자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불편함이 없으면 아무도 글을 쓰지 못한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사회에 한두 가지 불만은 가지고 있을 터. 오히려 밖으로 꺼내어 놓는 게 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거다. 이는 곁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 순전히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이겠지만.
사실 가족의 힘듦은 외면하고 싶지만, 생판 모르는 이름 모를 작가의 낡고 허름한 인생은 얼마나 힘이 되고 또 아름다운가. 마음이 아픈 이름모를 독자를 위해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고 어루만지는 따스하고 다정한 손길이. 자신의 우울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아름다운 순간이. 아름답고 맑기만 한 글에는 글쓴이의 영혼이 담겨있지 않다. 이렇게나 세상살이가 힘들고 흉흉한데 누가 밝고 맑은 글만 읽을 수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렇지 않을까. 쓰는 사람은 결핍이 있어야 의욕적이 되고, 독자는 아픔이 있어야 의욕적이 되는 것.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이렇게나 닮았다.그러니 표현하지 않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 내 삶 내내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을 상처와 우울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