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이 많은 사람들은 식탁에 차려둔 음식 중에 좋아하지 않는 걸 먼저 먹는다고 한다. 나는 식탐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 전 우리 가족들은 요즘 유행하는 소식좌였기 때문에 손이 작은 엄마를 탓하는 사람도, 맛없는 음식을 먼저 먹는 사람도 없었다. 식탐이 많은 사람을 처음 본건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들이었다. 무엇이든 허겁지겁 먹방유튜버처럼 먹어치우는 아들 덕분에 식탐이 많은 딸은 늘 맛있는 반찬을 자신의 앞접시에 쌓아두고 맛없는 반찬부터 먹었다. 그래도 늘 동생의 먹성이 불만이었다. 나는 손이 작은 사람이라서 늘 부족한 음식에 아이들은 저마다의 불만이 쌓여갔다.
딸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턱 관절염을 앓아왔고, 자라지 않는 턱 때문에 부정교합이 심해져 가족들의 식사시간을 따라잡지 못한다. 더 불만인 건 늘 자신의 앞접시에 쌓인 반찬에 동생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서였다. 왜 누나만 챙겨주냐 묻는 아들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음식양을 늘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나 힘이 세다. 고집이 센 엄마 덕분에 아이들의 사이는 더욱 안 좋아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딸은 식탐이 많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손이 작은 엄마와 잘 먹는 남동생, 그리고 자신이 가진 열악한 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식탐일 거다. 타고난 성향이 아무리 세도 환경을 이길 만큼은 아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원시간이나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같이 식사를 하기 어려워지면서 두 아이의 식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맛있는 것부터 천천히 음미하는 딸을 보며 조금 흐뭇해졌다.
아무 의미 없이 요미 사진 투척
내가 선천적으로 가진 성향은 후천적으로 변해간다. 외국으로 이민을 간 교포 2세가 그들만의 특유의 생김이 있는 것처럼.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도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을 받고 자란 사이코패스보다 학대받은 사람들의 범죄율이 더 높은 것처럼. 우리가 가진 선천적 성향보다는 후천적인 환경이 더 힘이 세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주는 게 더 낫다. 나는 오늘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