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웃으며 칼 두 개를 가지고 오른쪽 갈비뼈 한번, 왼쪽 갈비뼈 한번, 또 오른쪽 갈비뼈 두 번, 왼쪽 갈비뼈 두 번, 목덜미 한번. 리듬에 맞춰 찌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오케스트라 같다. 수족냉증이 있는 내 손발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 손발에만 열이 난다. 손 먼저, 그다음 심해지면 발이 뜨거워진다. 열이 날 때는 먼저 손이 뻣뻣해지고, 건조해지고, 벌레가 기어 다닌다.
지금 온몸엔 발진이 났고, 원래도 노란 내 얼굴은 노랗다 못해 누렇게 갈색으로 변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대학병원으로 가란다. 얼마나 아픈 사람이 많은지 대학병원엔 남은 자리가 없다. 진료를 보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럴 순 없다. 내가 생각해도 맞지도 않는 과에 겨우 진료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자마자, 병원 간호사는 미리 사전 전화를 해주는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이 과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중에 내일 가서 의사랑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과가 아닌 것쯤은 나도 안다. 간호사는 찜찜한 어투로 내일 보자고 한다. 다음날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는 똑같은 말을 한다. 나도 안다고, 그냥 대충 진료 봐주고 다른 과에 진료 협업요청이나 넣어 달라고. 그러면 당일에 응급으로 진료를 볼 수 있다.당장 진료예약이 불가능한 과에응급으로 진료를 보려면 타 병원의 진료의뢰서와 해당 병원의 협진요청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동네병원부터 가야 한다. 대학병원에 십 년을 단골손님으로 다니니 시스템에 빠삭해졌다. 당장 진료를 봐야 하는데, 예약 가능한 과가 거기밖에 없었다. 나는 외과에 예약했다. 몰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의사는 응급으로 진료 협진을 잡아줬고, 알맞은 과에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간호사는 또 진료비를 이중으로 내야 한다며 중얼거렸지만, 나는 실비보험이 있다. 간단하게 초진을 하고, 대충 몇 가지의 약을 처방해 주더니 피검사를 하고 가란다. 타이레놀과 위장약, 알레르기 약이다. 그런 거 집에 다 있지만 고맙게 받았다.
내 팔엔 남아있는 혈관이 없다. 채혈실에서는 십 년간 같은 이야기를 그것도 무지 놀라면서 한다. 이런 사람이 나뿐인가 조금 뿌듯했다. 역시 나는 비범한 사람이다. 결국 여기저기 주삿바늘을 찌르다가 손등에서 채혈을 했다. 많이 아플 거라고 어쩌냐고 친절하게 걱정까지 해줬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런 것쯤.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다.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온몸에 발진이 있지만 수포발진이 아니어서 검사불가. 염증수치 정상, 간수치 정상. 내 피검사를 한 게 맞는지, 공교롭게도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더니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고양이 알레르기가 경미하게 있다며 알레르기 약을 2주 치 처방해 줬다. 훗날 문제가 생기면 또 오라고 했는데, 대학병원 의사들은 조금 마음에 안 든다. 더 아픈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내 아픔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아프다. 아홉수인 올해 참 혹독하다. 아홉수가 끝나려면 아직 50일이나 남았다. 설마... 50일이나 더 아프려고? 내일 되면 낫겠지. 하지만, 그 이후 장염에 걸리고, 감기에 걸렸다. 그래. 올해 다 아프고 내년부터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