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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Dec 28. 2023

그런 게 사랑이지




 슬픈 한 해였습니다. 혹여 슬픈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12월 마지막 달에 사랑하는 할머니가 먼저 가신 할아버지를 만나러 하늘로 가셨습니다. 장례식에서 만난 삼촌, 이모들은 한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오 년만 더 사시지. 맞습니다. 95세, 정정하셨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하느님 걱정 마세요. 올해를 꼭 기억할게요.



 할머니는 너무도 가난한 집의 막내딸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소원은 배불리 먹는 거였다. 조금 더 형편이 나은 집의 막내아들이었던 할아버지와 결혼했지만, 결혼 후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결혼한 해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군대에 있던 할아버지가 장애인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통에 두명의 아이를 잃었다. 할머니는 세번째 딸이었던 우리 엄마를 낳고 또 죽을 것 같아서 윗목에 밀어 놓으셨다고 했다. 아마 정을 붙이지 않으려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살아냈고, 그렇게 맏딸이 되었다.





 "희야. 부엌 가서 물 좀 떠온나."


 

 엄마는 늘 밥상에 식구 수보다 밥그릇을 하나 덜 놓았다. 늘 엄마와 내가 먹을 밥은 한 그릇에 담겨 있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늘 엄마는 밥상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부엌으로 내몰았다. 씩씩거릴 새도 없이 부리나케 물 한 그릇을 떠서 달려온다. 엄마는 밥그릇을 내게 내어준다. "엄마는 다 먹었다. 이거 너 다 먹어." 배고팠던 나는 허겁지겁 밥을 밀어 넣는다. 천천히 먹으라고 내가 떠온 물그릇을 내게 건넨다. 엄마는 나를 보며 웃는다.






 할머니는 증조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이것밖에 없으셨는지 내내 이 말을 재미나게 하셨다. 나는 별생각 없 흘려들었지만. 할머니는 아마 증조할머니는 밥을 잘 안 드셨던 것 같았다고. 그걸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게 사랑이었던 것 같다고. 둘이 먹으면 한참 모자랐던 밥을 딸이나 실컷 먹길 바랐던 마음.



 오늘 아침, 딸과 아침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했는데, 접시에 하나 남은 베이컨을 내 밥그릇에 올려주며 "이게 사랑이지." 아니, 아니야. 네가 남긴걸 엄마한테 주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으로 장애인이 되어 돌아오셨다. 그로 인해 국가유공자가 되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비참했다.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돌아온 건 사람들의 싸늘한 과 가난이었다. 가난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눈은 견디기 힘들었다. 머리에 총을 맞아 한쪽 눈을 잃은 할아버지는 의안을 하셨는데, 그 모습이 사람들이 보기에 괴랄스러웠던 거다. 어린 나이었지만 가족인 내가 보기에도 흠칫 놀랄만한 생김이었다. 마음이 여렸던 할아버지는 알코올에 빠졌고, 자랑스러운 국가유공자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라 오로지 결과였다. 지금이었다면, 아마 마음이 여렸던 할아버지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했겠지만. 가난했던 그날들에 그건 사치에 불과했다.



 누가 뭐라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뎌내신 두 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비록 효도는 못했지만, 하늘에서는 좋은 것만 보시고, 좋은 것만 드시고 행복하세요.





대전국립현충원



 그 시절,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내가 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친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 하늘에서는 두 분 만나서 잘 지내시겠죠. 할아버지, 할머니. 하늘에서 편안히 잘 지내고 계세요. 먼저 간 증손주 만나면 잘 챙겨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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