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당에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승호: 너 중국음식 마니아구나? 음식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사라지던데. 뱃속으로 순간이동 슈슉.
윤아: 나 웃기지 마, 지금 배불러서 웃으면 힘들어. 근데 식사 전에 우리가 얘기했던 친구 사이를 망치는 이유,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승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쉽게 강요로 이어져서 문제가 되는 거였잖아. 그런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비매너까진 아니고, 강요가 비매너지. 인간관계에선 비매너가 있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모든 인간관계를 망치는 건 비매너야.
윤아: 당연하다는 생각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게 비매너를 자꾸 만들어내니 주의해야 한다는 거였네?
승호: 비슷해. 현실적으로 당연하다는 생각이 강요라는 비매너로 바뀌는 걸 막을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는 게 최선이야. 게다가 강요는 수많은 비매너 중 하나일 뿐이고.
윤아: 매너가 예의랑 같은 거잖아. 친구끼리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거야?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승호: 매너에는 ‘장례식장에선 검은 옷을 입는다’ 같은 상황에 맞는 예의도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도 있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너는 상대방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거지.
윤아: 그럼 내가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해도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 비매너가 아닐 수도 있겠네?
승호: 범죄가 아니라면 매너와 비매너의 기준은 결국 상대방의 기분이지. 주변을 보면 친구끼리 막말을 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있잖아?
윤아: 나는 친구끼리 그러는 걸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봤어. 그런 게 친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고.
승호: 솔직히 주변 사람들이 친구끼리 막말하는 걸 나쁘게 봐도, 자기들끼리 다투지 않으면 문제가 안 돼.
윤아: 그러면 뭐가 문제야?
승호: 문제는 사람의 기분이 항상 똑같지 않다는 거야. 어제는 친구끼리 막말해도 괜찮았지만, 오늘은 같은 말로 다툴 수도 있거든.
윤아: 나도 예전에 똑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때는 적당히 웃고 넘겼는데, 어떤 때는 심하게 화가 나서 싸운 적이 있어.
승호: 변함없이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걸 일관성이라고 하잖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일관성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서 문제가 돼.
윤아: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거 아니야?
승호: 조금 애매하지? 예를 들어, 어떤 어린아이가 5세부터 10세까지 뽀로로 캐릭터를 좋아했다면 그 기간 동안 한 캐릭터의 애정에 일관성이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아이가 11세부터 15세까지 짱구 캐릭터를 좋아했다면 어떨까? 5년 단위로 보면 일관성이 있지만, 10년 단위로 보면 일관성이 없는 거야.
윤아: 짧은 기간으로 보면 일관성이 있지만, 긴 기간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네.
승호: 무조건 그렇지는 않지만 긴 기간으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쉬워서 그래. 어린 시절 동요를 좋아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잖아? 물론 짧은 기간에도 사람은 이랬다 저랬다 바뀔 수 있어.
윤아: 그런데 왜 갑자기 일관성 얘기야?
승호: ‘선 넘지 마라’라는 말 들어봤지? 그 선은 상대방의 무례를 참을 수 있는 한계야. 친구끼리 무례하게 지내면 이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이어가게 돼.
윤아: 문제는 그 선이 일관성이 없다는 거구나?
승호: 맞아.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선의 위치가 자꾸 바뀌어. 그래서 어제는 웃으며 넘겼던 말도 오늘은 크게 다툴 수 있는 거야.
윤아: 친구끼리 재미있게 지낸답시고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주고받기보다는, 재미가 조금 덜하더라도 서로 매너 있게 지내는 게 낫겠네?
승호: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절교하게 되는 불안한 친구 사이보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안정적인 친구 사이가 더 좋아. 서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말과 행동도 성숙해져야 하고.
윤아: 나도 매너 있는 친구 사이가 더 좋아. 나 역시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무례하게 대할 때가 있어서 그 일로 뒤늦게 후회할 때가 있어. 게다가 난 눈치도 없을 때가 많아서.
승호: 친하다고 해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다 드러내는 건 아니야. 친구 사이에도 상대방 마음을 적당히 알아채는 눈치가 필요해. 눈치가 없다고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친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있지. 지난번에 네가 친구 사이에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눈치는 부족한가 봐?
윤아: 친구에게 관심은 있는데, 친구 마음을 예측하는 건 잘 못해.
승호: 상대방 기분이 좋은 건 잘 드러날뿐더러 눈치채지 못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안 돼. 하지만 상대방 기분이 나쁜 걸 눈치채지 못하면 친구사이에 문제가 될 수 있지.
윤아: 어떤 글에서 봤는데, 목표를 향할 땐 눈치 보지 않고 가야 하지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땐 눈치가 필요하대.
승호: 맞는 말이야. 자신이 혼자 하는 일은 눈치 볼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눈치를 볼 필요가 있어.
윤아: 눈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닌 것 같아.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하달까? 앞으로 눈치를 좀 더 키워야 되겠어.
승호: 흔히 눈치를 본다고 하면 상대를 두려워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야.
윤아: 그럼 이제 내 눈치 좀 보고 살지 그래?
승호: 우리 방금 매너에 대해 이야기한 거 같은데.
윤아: 하여튼 한마디는 안 져요.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친구라도 나쁘게 끝난 사이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다시 만나 안부를 물으며 친구 사이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라도 매너 없이 대하면 크게 다투고 다시 친구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비매너로 서로를 대하지만 않아도 친구 사이는 상당히 단단하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매너를 저지르지 않아도 사람은 일관성이 없을 때가 있어서 별다른 이유 없이 상대방이 싫어지거나, 딱히 문제가 없어도 주변 상황이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관계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피하려면 적당히 눈치껏 상대방을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관계에서 특별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매너와 눈치는 친구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특히 가족 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가족 간에도 ‘선’이 있으며, 상대가 그 선을 넘으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깁니다. 가정에서 말과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될 땐 서로 예의를 지키며 높임말을 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 노력만으로도 가족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크게 막을 수 있습니다.
친구 사이는 큰 괴로움을 참아가며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작은 다툼으로도 관계가 끝날 수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는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너와 눈치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툼이 없는 관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투고 나서 화해하는 방법은 애인 파트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