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와 승호는 점심 식사를 하러 중국식당에 갔습니다. 두 사람은 식당 메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윤아: 너 탕수육 소스는 찍어 먹는 게 좋아? 아니면 부어 먹는 게 좋아?
승호: 난 찍어 먹는 게 좋아.
윤아: 진짜? 탕수육은 부어 먹어야 제맛인데. 나 너한테 조금 실망했어.
승호: 실망까지야. 그냥 서로 다른 취향으로 보면 안 될까?
윤아: 난 그게 잘 안 돼. 강제로라도 너를 부어 먹는 쪽으로 바꾸고 싶어.
승호: 한 마디만 할게. 난 네 부하가 아니야.
윤아: 너랑은 중국식당 가면 안 되겠다. 조금 화나네.
승호: 왜 사람은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기가 이리 힘들까?
윤아: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면 의견이 달라도 상관없는데, 가까운 사람이라면 문제가 돼. 남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니까. 난 지금 너랑 탕수육을 먹고 싶은데, 서로 의견이 다르니 지금 문제가 되잖아.
승호: 난 음식을 조금 싱겁게 먹어서 주로 소스를 많이 찍어 먹지 않아. 당연히 소스를 붓는 건 더 좋아하지 않는다고.
윤아: 나 슬퍼.
승호: 화났다 슬펐다, 이래저래 혼란스럽네.
윤아: 확실히 친해지면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할 때가 많아지고, 의견이 다른 것도 인정하기 어렵고, 감정 표현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것 같아.
승호: 맞아. 사이가 가까워지면 익숙해지니까 그런가 봐.
윤아: 그만큼 친구 사이가 꽤나 강력한 인간관계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니지. 자주 다투거나 크게 한 번 다투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어.
승호: 친구 간의 다툼, 꽤나 중요한 문제야. 특히 다투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나빠졌는지가 더 중요해. 아무리 크게 다퉈도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별 문제 안 되기도 하고, 작게 다퉈도 기분이 많이 나쁘면 바로 절교하기도 하고.
윤아: 너 슬퍼서 눈물이 나올 때 ‘슬픔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슬픈 기분이 사라져?
승호: 당연히 아니지.
윤아: 내 감정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을 때가 많아. 친구랑 다투고 기분이 나빴을 때, 억지로 기쁜 일을 생각하여도 나쁜 감정이 풀리지 않잖아?
승호: 응, 하루 종일 기분 나쁠 수도 있어.
윤아: 사람의 감정은 일단 나빠지면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상대방의 감정은 더더욱 자기가 다루기 어렵고. 결국 상대방 기분을 망치지 않는 것이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승호: 그러면 어떤 일이 친구 기분을 가장 나쁘게 만들까?
윤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심각한 건 친구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요구하는 거야.
승호: 가끔씩 친구끼리 부탁하거나 부탁받을 때가 있잖아. 서로 친하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그게 문제가 된다고?
윤아: 물론이지. 부탁이 강요로 변하면 큰 문제가 되지.
승호: 처음엔 좋게 부탁하다가 점점 강제로 요구하게 된다고?
윤아: 기분 나쁘게 부탁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부탁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게 더 심각한 문제야.
승호: 어떻게?
윤아: 처음엔 ‘친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엔 ‘이 정도도 안 들어주면 친구가 아니지’라는 식으로 변할 수 있어. 그러면 부탁이 강요가 돼버려.
승호: 만약 강요한 사람이 거절당하면, 친구로서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거절했다고 생각하겠네?
윤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부탁하는 사람이 친구에게 거절당하면 상대방을 나쁜 친구로 몰고 크게 화내면서 절교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
승호: 그건 정말 비정상적인 태도네.
윤아: 그렇지. 적당히 친한 사이라면 그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진 않아. 그 대신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상대방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비정상적인 요구를 할 수도 있어. 이건 가족도 마찬가지야. 가족이 서로에게 많이 의지할수록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하기가 쉬운 것처럼.
승호: 나도 부모님께 그리 비싸지 않은 물건을 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을 때 꽤나 실망했었어. 그 정도는 선뜻 사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사주셨던 거였더라고.
윤아: 나도 방금 전에 네가 탕수육 찍어 먹기를 좋아해도 내가 부어 먹는다면 당연히 내 스타일에 맞춰 줄거라 생각했어. 나도 모르게 너에게 의지하고 강요한 거지. 친구든 가족이든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일이 쉽지가 않아. 아무튼 상대방이 내 부탁에 따라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승호: 그러려면 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상대방과 자신의 의견이 같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해야 해.
윤아: 그거 좋은 생각이다. 만약 네도 나처럼 소스를 부어 먹는 게 좋다고 말했으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라고 내가 말하는 게 아니라 ‘오, 신기하게도 나랑 취향이 같네’라고 말하는 거잖아.
승호: 자신의 기대와 상대방 반응이 다르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라 놀랍지 않은 일, 즉 평범한 일이 된 것뿐이야. 내 기분이 나빠질 필요도 없고. 서로 다툴 일도 없을 거고.
윤아: 자신의 기대와 상대방 반응이 같으면 특별한 일이니까 감사하다는 표현을 꼭 해야 하는 거고.
승호: 친구끼리는 고맙다는 말 안 해도 된다던데?
윤아: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부탁하는 사람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필요하면 선물도 하고, 최소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지.
승호: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감사하는 게 기본이겠지.
윤아: 그럼 이제 탕수육 먹자. 음식이 오면 각자 앞접시에 덜어서 자기 취향대로 먹는 걸로 하자.
승호: 뭐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됐잖아.
윤아: 헤헷.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는 것보다 다투지 않는 것이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데 더 좋습니다. 사람은 가까워질수록 서로 의지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감정이 크게 상하면 친구 사이가 망가집니다. 친구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좀 더 잘해주는 것보다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과 친구가 서로 의견이 같은 걸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친구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친구끼리 다투게 만듭니다. 이런 다툼을 피하려면 서로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꾸만 없애가야 합니다. 이것은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 사이를 망치는 일은 강요하기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