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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an 21. 2024

생각과 같은 일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과 같은 일이 과연 있을까.

새해 첫날이자 사 년 만의 출근 전날,  붙어 다니던 남편을 두고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갔다. 걱정이 8할이었지만 대출반납을 하고 서가를 다니며 책을 꽂고 책과 함께하는 사서로서 새로운 삶이 내심 기대되었다.

다이소에서 산 얇은 노트를 적어내려 갔다. 날짜를 적고 2024년 모토를 '경험, 만족, 도전'이라 크게 쓰고, 바라는 모습, 가져야  태도를 적어내려 갔다.

1. 말은 많이 하지 말 것  

2. 화내지 말 것  

3. 마음을 활짝 열지 말 것  

4. 걱정하지 말 것 

5. 욕먹는 것을 두려워말 것

쓰다 보니 금기사항뿐이라 하나  적는다.

6. 나답게, 나와 좋은 관계 맺을 .


출근 첫날, 임용식이 있다 하여 시청으로 향했다. 맞는 아우터가 없어 격식을 갖추지 못하고 다운 베스트를 걸쳤다. 백수의 삶이 끝나는 게 아쉬워 연말에도 눈을 뚫고 놀러가서 먹고 즐긴 여파다. 출근날인 오늘까지도 발령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공무직 다섯 명과  공무원들이 서른 명쯤 앉아있었다. 잠시 후 온 인사담당자의 지시아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곧이어 단상에 서서는 한 명 한 명 발령지를 호명했다. 놀라고 좋아하는 탄성이 들렸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시청소속의 지인이 연말인사공고를 캡처해서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게 먼 곳이었다. 꽃다발과  임용장이 그나마 초라했던 구색을 갖추어주었다. 각 도서관에서 팀장급들이 마중 나와 일터까지 공무직 직원을 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발령이 지금 이 도서관도 아니고, 삼십 분쯤 더 걸리는 곳에 한창 짓고 있는 도서관으로 가게 될거라는 거였다. 함께 온 선생님은 이곳이 곧 발령지라 바로 인수인계에 착수하였다. 포지션이 없는 나에겐 나중을 위해 배워두라고만 했다. 인사를 돌고 전체가 식당에 모여 떡국을 먹었다. 팀장들과 테이블에 앉아 묻는 말에만 긴장을 숨긴 채 자연스럽게 답했다.  생리가 시작되어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붙잡고 엉덩이 한번 붙이지 못한 채 시종일관 이해된다는 듯 거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으러 다녔다.



3주가 지났다. 2주간은 매일 설사를 했다. 1년의 경력이 있던 함께 온 쌤은 지독스런 변비로 고생했다. 지금도 악몽을 꾼다. 교통사고로 발목이 잘리는 꿈, 눈썹이 다 빠지는 꿈 등. 진심 똥오줌도 못 가릴 정도로 정신 빠질 정도로 바빴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장갑을 끼고 상호대차  보낼 가방을 싸서 보내고 한 수레 가득 온 가방에서 책을 일일이 확인하며 구분한 후 정리실에서 전산처리를 한다. 대출반납도 전쟁이다. 유아동 특화도서관이라 무겁고 두꺼운 책을 사십 권씩 빌려가고 cd를 몇십 장씩 빌려간다. 뒤에 떡하니 무인 셀프 대출반납기가 있지만, 아무도 셀프로 하지 않았다.

실수를 계속했다. 전산이랄 게 없는 상담직종에서 일하다 수십 개의 절차에 따라 자료상태를 구분하고 버튼을 정확히 누르는 일은 어려웠다. 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서비스가 있는지도 몰랐다. 문화행사나 교육프로그램은 차치하고라도 대학교 책을 대신 빌려주고  다른 지역의 도서관에서 책을 받아서 빌려주고 장애인, 임산부 택배서비스, 희망도서신청, 동네서점 바로대출 등 셀 수가 없다.


오지 않은 책을 잘못해서 도착 버튼을 눌렀다.  이용자가 와서 왜   걸음 하게 하냐고 무서운 얼굴로 화를 냈다.


휴관인 월요일에 혼자 출근을 했다. 겨울방학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 경비처럼 문을 계속 열고 닫고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이용자들이 밀고 들어왔다. 휴관이라고 쓰여 있는  왜  보는 건지. 걸려오는 전화와 오고가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와중에 외부반납함을 털고 반납일 보정을 하지 않아(외부반납함은 자동반납처리가 되지 않아 다음날 아침에 전날로 날짜를 수정한 후에 반납해야 한다) 하루 연체가 된 민원인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하루라도 책을 못 보면 정말 혀에 가시가 돋는 건지.  처리할 방법을 모르겠어서 "아.. 네..."

만 반복하다 도대체 왜 몇 번을 말해도 말귀를  알아듣냐고 욕을 먹었다. 또 하필 오늘 잡지 코너 공사를 했다. 지저분한 테이프자국을 일일이 칼로 긁고 손톱과 물티슈로 떼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  같았다. 상호대차 나갔다가 돌아온 수백 권을 서가에 꽂았다. 


아이가 없는 나로선 아동열람일 자체가 생애 최초 방문이었다. 만화코너가 지옥의 미로였다, 인기만화순으로 배열된 건지 어떤 건지 도무지 청구번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만화를 한 곳에 몰아놓은 것도 아니었다. 순서가 완전히 뒤죽박죽, 내 뇌의 뉴런들도 슬슬 엉켜갔다. 신간은  다른 자리를 찾아야 했다. 계단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타도서관으로 보낼 책 백오십 권 정도를 간신히 찾아와서 전산처리 후 가방에 넣는데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예약을 취소하고 상호대차로 돌릴 건데 뒤에 예약이 없는지 확인해 주고 선반 만료를 해달란다. 퇴근시간은 코앞이고 처리할 책은 수북이 쌓여있는데 이분의 말은 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전화 하신 분도 내가 울 것 같았는지 감사하게도 내일 다시 하겠다고 끊어주셨다. 휴관일은 위층 공무원 사무실도 야근이 없는 날이라 소등을 하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이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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