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존재

by 바다숲

잠자리 떼가 이리 눈앞에 알짱거리는 걸 보니 가을이 왔다. 자칫 얼굴에 부딪힐 것처럼 수십 마리가 낮은 고도로 자유비행을 한다. 하늘이 유달리 높아지고 여름새들이 남쪽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가을이 왔다.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잠을 잘 자는 것 보니 가을이 왔다. 도서관에 걸어가도 땀이 배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가을이 왔다. 가방에 가디건을 개켜 챙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데, 뿌린 씨앗이 없으니 거둘 것이 없다. 괜찮다. 거둘 것 없어도 태양은 나를 위해 빛나고 있으니까.


요즘 읽는 <일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은 1971년 영화 <천국으로 가는 노동계급>의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입니다. 나올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일 겁니다. 태양은 오늘 당신을 위해 빛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예전엔 태양을 볼 수 없었다. 왕복 두세 시간짜리 직장인의 비애였다. 지금은 일하지 않을 권리를 착실히 이행 중이므로 흐린 날을 제외하곤 매일 태양을 볼 수 있다.


태양은 나를 위해 빛난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부드럽게 스친다. 바람 역시 나를 위해 존재한다. 길가의 초록나무도 길목을 버티고 서서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구름은 나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뭉게뭉게 뽀얗게 피어난다. 하늘의 별도, 달도 머리 위에서 내 앞날을 응원하며 나를 위해 밤마다 기도해준다. 나는 밤하늘의 축복 속에서 잠들고, 떠오르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하루를 시작한다. 멀리 바다로 가면 푸른빛 넘실넘실 물살에 부딪히는 파도, 부서져 흩어지는 노란 햇살이 나를 위해 반짝거린다. 뿌린 것 없이도 이 모든 걸 거두게 해 준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모두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며 태양을 잊은 채로 지친 몸을 눕힌다. 일과 삶의 균형, 나답게 사는 것,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을 생각할 여유도 당연히 없다.

남편과 엄마의 하루를 생각해본다. 종일 쭈그려 일하는 남편이 한낮의 햇빛을 으며 잠시라도 허리를 쭈욱 펴길 바란다. 아침에 퇴근하는 엄마가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길 바란다.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좋아하는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곁들인 베이글을 드시러 카페로 향하길 바란다. 그들에게도 나의 하루처럼 빛나는 태양이 존재하길 바란다.


샤워기를 오래도록 틀어 놓고 따뜻한 물을 맞는 자유, 잠깐 자야지 하고는 모로 누워 밤이 되어도 당황하지 않을 자유, 자기 전 내일 할 일을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채울지 궁리하는 자유, 또한 누군가의 수고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에는 남편도, 친구도, 부모도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잘해주면 감사를 받으려 하면서도, 내게 잘해주지 않으면 화가 났다. 자주 푸념을 하면서도 친구가 오래 넋두리하는 것은 귀찮고 듣기 싫었다. 부모의 도리를 지적하면서 자식 된 도리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연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상상해도 괜찮다. 그러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지하철 안 좀비 같은 눈빛을 한 이들도 가슴 속에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하나씩은 품고 있다. 모두가 시시각각 애쓰며 살고 있다. 나도, 너도 주인공임을 잊지 말고 내 삶이 애틋한 만큼 귀하게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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