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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Mar 20. 2024

몽롱한 밤과 낮의 이야기 +

- 라라 소소 22

나는 책으로 둘러 쌓인 곳에 있다.     


책들은 너무 높이 높이 쌓여 있어서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창문이 있나 보다.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고 있다. 전등이 보이지 않는데도 내가 있는 이곳은 둘러 쌓여 있는 책들이 어떤 책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은은한 조도를 유지하고 있다. 눈은 오랜만에 아프지 않고 부드럽다. 새 책의 잉크 냄새와 약간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종이 냄새가 섞여서 내 코를 간지럽힌다. 먼지도 조금 반짝이는데 다행히도 기침이 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책먼지는 알레르기를 발생시키지 않나 보다. 꿈속에서도 나는 내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먼지 알레르기. 책들과 먼지와 약간의 빛과 반짝임이 나를 매혹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알레르기로 고생했던, 눈물 콧물 다 뺐던 며칠 전 기억이 떠올라 이마에 살짝 주름이 생긴다.     


봄,

벚꽃을 상상하며 미소 짓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누군가가 혹은 어떤 무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작은 목소리여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이난 목소리 같기도 하고 흥분된 소리같기도 하다.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한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진한 갈색에 꽃무늬가 자잘하게 새겨있는 긴 원피스를 입고 있고, 그 원피스 위에는 니트로 짠 약간 톤 다운이 된 밝은 아이보리색 조끼를 입고 있다. 톤이 하나 다운되었다는 느낌은 낮은 조도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조끼 앞의 양쪽에는 자그마한 주머니가 달려있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책이 들어있다. 작은 조끼에 작지 않은 책이 맞춤으로 들어있다. 그 책은 너무나 소중해서 몸에 간직할 수밖에 없고, 그 책이 내 작은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서서히, 너무 미세해서 나조차 알아차릴 수 없게 발을 내디뎌본다.     


여전히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책 속에서 나는 소리일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에는 그 안에서 들려온다는 확신을 지낸 채 책에 귀를 기울인다. 책이 움직인다. 책에서 소리가 난다. 그리고 작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쪽에 갑자기 작은 문이 생겼고, 아니 내가 그 문을 발견했고 작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이쪽으로 나오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작은 책을 들고 있는데,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을 읽으려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밝은 밤>을 외부에 커다란 달이 떠서 밝아진 밤에 읽어야 하는지, 실내에 환한 전등을 켜 놓아서 주의가 밝아진 밤에 읽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읽을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달이 밝은 밤이 좋을까, 전등이 밝은 밤이 좋을까. 야외가 좋을까, 실내가 좋을까. 덥지 않은 따뜻한 여름날 밝은 달 아래에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밝은 밤>을 읽으면 좋겠다. 코가 차가운 겨울날 온몸에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환한 전등 빛 아래에서 진한 코코아를 마시며 <밝은 밤>을 읽으면 좋겠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고, 우리 그렇게 하자.     


이 작은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나 큰 내가 보이지 않나 보다.     


나는 내 옷을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말을 걸 수가 없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속으로만 이야기를 건넨다. 최은영 작가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이라고, 당신들과 함께 밝은 밤에 이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금이 밝은 밤이지 않냐고, 그렇게 말을 건넨다. 어떤 작은 사람 하나가 - 이 사람의 이름은 에이미이다 - 나를 올려다보며 나와 눈이 마주친다. 드디어 통하는구나! 에이미는 아무 말 없이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수줍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다.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그런 말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나는 너를 볼 수 있어.

너는 주머니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나도 이곳에서 살아야겠다. 참 포근해.    


주머니 속의 에이미가 움직이고 있다. 에이미의 표정도 움직임도 영화처럼 내 눈앞에 약간은 희미하고도 선명하게 보인다. 에이미는 내 주머니 속을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재잘재잘 말을 하고 있고,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에이미가 정말로 나와 함께 살아도 될까? 에이미의 가족들이 에이미를 걱정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데 에이미 눈에만 보인다면 그건 어떤 의미인 걸까? 내가 환상인가 에이미가 환영을 보는 건가. 이상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일지 이상한 사람은 괜찮은 건지 아닌지 그런 것들도 걱정이 된다.     


에이미는 나에게 초코칩 쿠키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에이미에게 진하고 향이 좋고 따뜻한 커피를 준다. 그 커피는 D라고 보라색으로 크게 쓰여 있는 머그에 담겨있다. 내 손에도 딱 들어가는 머그가 에이미 손에도 맞춤으로 잡힌다. 에이미가 건네준 초코칩 쿠키는 내 손바닥에 에이미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로 올려있다. 하지만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쿠키는 사라지지 않는다. 줄어들지 않는다. 자꾸만 잘라서 먹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곳은 캐나다일까, 한국일까. 내 앞에 엄마가 있다. 나는 ‘엄마!’하고 불러본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보이지 않나 보다. 나는 여기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 나는 또다시 ‘엄마! 엄마! 나야! 선영이!’라고 조금 더 크게 말을 걸어본다.      


나는 선영이가 아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선영이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보다. 여전히 나는 들리지 않는 사람. 엄마는 다만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엄마가 사라졌다. 언니가 병원에 있다. 언니가 많이 보고 싶었는데 언니가 눈앞에 보이니 좋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언니는 컨디션이 괜찮아 보인다. 그동안에 많이 앓았는지 전보다 살이 더 빠졌지만 그래도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고 있고, 그 어느 때 보다도 화사하게 빛이 난다.   

   

창문 밖으로는 벚꽃이 피어있다. 아무래도 여기는 한국인가 보다. 캐나다는 아직도 추울 게 분명하다.     


카네이션을 받았는데 그 카네이션을 가지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내가 왜 카네이션을 들고 나오지 않았을까, 카네이션은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속으로 나를 꾸짖고 있다. 하얀 병실에는 여섯 개의 침대가 있는데,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다. 이 넓은 곳을 언니 혼자 쓰고 있어서인지 너무나도 쾌적해 보인다. 나는 옆의 침대에 누워서 언니와 마주 보고 있다. 언니는 신기하게도 국화차를 마시고 있다. 언니는 신장이 안 좋아서 차를 잘 마시지 않는데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나도 함께 국화차를 마시고 있다. 오늘은 언니와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갑자기 생각난 엄마,      


언니,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저기 계시잖아. 피곤하신지 주무시고 계시네. 작게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데 역시 엄마답다. 병원에서도 이렇게 잘 주무시다니 말이야.     


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내 질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언니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는데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언니는 언니 앞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송이 장미꽃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장미꽃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시가 굉장히 날카로워 보였다. 그리고 노란색 장미였다. 엄마는 노란색 프리지어를 좋아하는데, 언니가 장미를 좋아했었나, 내가 캐나다에 있는 사이에 엄마와 언니의 취향이 변했나,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바람이 창문 너머로 들어온다. 벚꽃이 흩날린다.     


캐나다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끊임없이 내리던 눈이 흩날릴 때와 같은 풍광이다. 언니는 아름다워했지만 나는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눈은 이제 그만. 꽃구경은 하고 싶다. 캐나다의 봄이 생각나지 않는다. 봄에는 꽃이 피어야 하는데 꽃을 본 기억이 없다. 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속의 봄.     


조카들도 없고 형부도 없고 내 아들들도 없고 내 남편도 없다. 이 병실에는 내가 볼 수 없는 엄마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언니와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이 있을 뿐이다. 엄마는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언니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안심이 되어서 마치 저 노란 장미가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지 않다. 닮았다. 노란 장미가 스르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데도 전혀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 따스함에 왠지 눈물이 흐른다.


진짜 내 뺨으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내 눈에 맺혀 있는 것이 느껴졌고, 가슴 안에서는 수영장 미끄럼틀에서 물이 또로록 흘러내리듯이 물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눈물일까 수영장 물일까. 수영장 미끄럼틀에서 재미있게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내 가슴속에는 파란색 일직선 아래로 떨어지는 길고 곧은 미끄럼틀이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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