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3

by Chiara 라라


나는 굉장히 느린 사람이다. 먹는 속도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생각도 느리고, 반응도 느린 편이다. 아침에도 일어나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생활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일단 눈을 뜨면, 아니다, 눈을 감고 아침 기도를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위해 침대맡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가 다시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잠시 뒤 핸드폰 확인을 하고 다양한 영어 채널을 틀어놓고 쉐도잉을 하면서 잠에서 완벽하게 깨어난다.

여기서 잠깐, 라라쌤의 아침 영어 채널에 대해서!

요즘에는 유튜브로 BBC나 ABC나 CNN 뉴스를 틀어놓고, 듣거나 보거나 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개인적으로는 CNN 보다는 BBC나 ABC가 더 재미있다. 맨날 똑같은 소식이고 재미가 없을 때에는 TED를 본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기 때문에 세계 소식을 알 수 있어서 뉴스는 유용하다. 하지만 한국 소식에 민감하지 못하다는 것이 함정. 그래서 종종 Arirang TV 도 시청을 한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영어로 말하는 앵커의 빠른 뉴스 소식을 받아들일 정도의 실력이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외국 뉴스 채널을 잘 보지는 않았다. 편하게 듣고 따라 할 수 있는 원서 오디오북이나 수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영어신문 기사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쉐도잉을 하곤 했다. 쉐도잉을 하면 아침에 두뇌를 활성화하기에 좋다. 따라 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자세히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입으로는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쉐도잉은 영어단어 shadow (그림자)를 생각하면 된다. 귀에 들리는 소리를 그림자처럼 따라 하는 것이다. 쉐도잉에 관한 자세한 팁은 다음에!!!

아! 하나만 더! 아침에 두뇌 활성화를 시킬 때 영어 채널을 활용하고 싶으면, 반드시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쉽고, 재미있는 채널"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중도 못 하고 재미도 없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이렇듯 아침에는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누군가의 눈에는 나의 이런 시간이 꿈지럭거림으로 비칠 수도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아침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며 깨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건강상의 문제도 있다. 밤에 잠을 충분히 그리고 편하게 자지 못해서 눈을 뜨면 몸에 미세한 긴장성 통증이 있기 때문이다. 혈압이 낮은 편이고 오전에는 어지럼증이 자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 또한 핑곗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나와 함께 휴가를 떠난 아이비를 좋아하는 쌤은 굉장히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전환이 빠르며 빠릿빠릿하게 생각하고 움직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이런 둘이 만났으니, 아침이 어땠을까?

정해진 일정이 있는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아니었으면 여행지에서 큰일이 났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녀와서 더 이상은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아니고 그냥 직장동료로 지냈을 것 같다. 지금처럼 이렇게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날 아침, 정해져 있는 아침 식사가 시작되는 그 비슷한 시간에 그녀는 준비가 이미 다 끝나 있었다. 나는 계속 멍한 상태였다. 그리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온몸과 맘이 긴장한다. 그래서 그냥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옷을 입고 식사를 하러 갔다. 그녀는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더욱 긴장되었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는 물론 뷔페였다. 그녀는 간단히 식사를 끝냈다. 나는 입에 빵을 넣고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내 접시에는 빵이 한가득 있었고 그중에 하나를 들어 입에 넣고 천천히 우물거리고 있을 때 그녀의 식사가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엉엉.

앙코르와트는 굉장히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그 광활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잊고 긴장을 풀 수가 있었다. 하늘도 굉장히 맑고 예뻤다. 게다가 건축에 몸을 담고 있었던 나에게 앙코르와트의 건축물들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도풍을 닮은 듯하지만 앙코르 왕조만의 정교한 모습들과 그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앙코르 왕조가 멸망하면서 정글 속에 묻혀버린 이 웅장한 사원들, 다시 발견된 이후에는 약탈과 훼손당한 아픈 역사, 복원 불능 상태의 유물들이 많은 안타까운 현실, 이 모든 것들은 그곳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가 보호해야 할 문화, 자연 유산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건축을 공부하면서 유심히 살펴보았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 또한 마련해 주었다.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하면, 함께 여행하는 멤버들이 생긴다. 우리 팀은 인원이 많지 않았다. 딱 작은 차 한 대 정도의 적당한 인원이었다. 그중에 동창생 아저씨들의 무리가 있었다. 아저씨들은 딸 또래의 젊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여기에서 나와 아이비 쌤의 다른 점이 나온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냥 웃으면서 친절할 수는 있지만 대화를 잘 이끌지는 못한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아이비 쌤은 굉장히 말을 잘했다. 저녁 자유시간에 아저씨들이 사 주는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그곳에서 잘 어울렸다. 나는 술을 안 마시니까 더 관심이 없기도 했고, 우리 둘이서만 자유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단체니까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그냥 가만히 옆에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일정 중에 굉장히 여유로운 하루가 있었다. 우리는 그날 호텔의 수영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아이비 쌤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수영을 굉장히 잘하는 것이다. 게다가 횡형까지 할 수 있는 그녀를 보며 많이 놀라기도 했고, 그녀의 횡형을 나도 따라 하며 많이 웃기도 했다.

우리의 성향은 많이 달랐지만, 취향은 비슷했고, 통하는 것이 있었기에 이 여행은 우리가 친해지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약간의 긴장을 여행 내내 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여행 마지막 날, 두 명 모두 점심 식사 후 심하게 체해서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거의 쓰러져 있었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재미있는 첫 휴가였다!

우리는 이 여행 이후에 취향이 비슷한 것을 알았고, 영화도 공연도 같이 보러 다니는 친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계기가 있어서 회사 이외에서도 활동을 같이하게 되었다. 매일 붙어 다니는 우리에게 베프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 중에 한 명이 없으면, 한 명에게 다른 한 명의 안부를 묻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이 친구 덕분에 나의 회사 생활은 더욱 안정되었다. 나는 틈만 나면 상담실로 쪼르르 달려가서 교수부에서 있는 힘든 일들을 구시렁거리곤 했다. 그리고 상담부와 교수부 간의 협업도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되었다.

이렇게 첫 휴가를 무사히 보내고 또다시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라라에서 진정한 라라쌤으로 한 걸음씩 도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라라쌤에게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 찾아오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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