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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한국과 캐나다는 거리가 멀었다.
직항으로 가도 10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경유로 끊었더니 밴쿠버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하루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환승지는 중국 상하이.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은 7시간. 환승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에 들고 탄 짐을 다 가지고 내려서, 환승로를 통과해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탑승구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미미는 비행기를 타는 게 처음이었고 순이는 비행기를 타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환승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둘 다 어리바리한 상태로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불안해했다. 중국이기에 영어가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더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순이는 영어를 잘한다. 출발하기 전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환승할 때 환승지에서 짐을 찾고 부치는 과정을 다시 한번 더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미미와 순이가 탄 비행기는 수화물 전체를 이동시켜 주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안 그랬으면 밴쿠버에 도착하기도 전에 국제 미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몸만 가거나 짐만 가는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건 미미의 내면에서만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푸동 공항에서 크게 한 일은 없었지만,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면서 상점들을 구경하고, 쌀국수 같은 걸 사 먹고, 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하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순이의 말을 주의해서 듣거나 흘려듣기도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불안한 마음에 환승 시간이 영영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은 무탈하게 흘러갔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마음 편안하게 기내식도 먹고, 간식 박스도 받아서 과자를 우물거리고,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와인과 맥주도 한잔씩 마시면서 12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밴쿠버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졸졸 따라 나갔다. 입국 수속을 밟으며 - 어디서 머무니?, 며칠 동안 있을 거니?, 친구집이요, 2주 있을 거예요, 웰컴투 캐나다, 도장 쾅쾅, 인조이 유어 트립!! - 긴장했는데 다행히 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수화물을 찾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게이트를 걸어 나간다.
수많은 외국인들 사이에 까만 머리의 제니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순이는 종종 제니가 어디에 내놓아도 눈에 띄는 아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미미의 눈에 이 순간만큼 순이의 말에 동의하며 세상에서 제일 반짝여 보이는 사람이 제니였다. 셋은 부둥켜 얼싸안고 반갑다고 잘 왔다고 고생했다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영어를 사방으로 분산시켜 퍼트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밴쿠버 시내로 나왔다. 시내는 약간 시끌벅적했다. 공항에서처럼 영어가 들리고 딱 봐도 외국인이라는 게 티가 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식당이나 펍 같은 가게도 많았고, 쇼핑몰처럼 보이는 큰 건물도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짐이 있어서, 제니네 집으로 가서 짐을 먼저 풀기로 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한참을 걷고 나서야 제니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긴 것 같았다. 제니가 산다는 건물은 우리나라로 치면 낯은 층의 긴 복도식 아파트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아파트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단층으로 방이 주룩 나열되어 있던, 모텔이라고 쓰여 있던 숙소 건물이 위로 몇 층이나 겹쳐 만들어진 건물로 보였다. 엘리베이터도 없었고 디귿 자 복도는 각 변이 모두 굉장히 길었다. 집과 집 사이는 전혀 방음이 되지 않는 플레이트 벽으로 구획되어 보였다. 별거 아니지만 미미는 가끔은 자신이 건축과 학생인 게,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게 이렇게 소소한 부분으로 드러나서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지나친 사람들은 노인들이었는데 까만 눈과 까만 머리를 가진 외국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약간 벗어난 시골 같았고, 주변은 한산했다. 이상하게도 한국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내가 미리 얘기하지 못했는데•••”
집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제니는 약간 난처한 듯 말을 꺼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문제라기보다는 예상을 빗나간 일들이 약간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 우선 거실이 비워져 있지 않았다. 거실에서 지내는 한국인 친구가 방학이 시작되면 여행을 간다고 얘기했었다. 거실이 비니까 같이 집을 사용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미와 순이가 거실에서 머물기로 한 거다. 거실이 조금 더 넓으니까 순이와 미미가 거실에서 지내든지, 낯선 곳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거실이 불편하면 제니의 방에서 둘이 지내고 제니가 거실에서 지내든지 하자고 얘기를 미리 해 놓았었다. 제니의 방 말고 어디든 머물 공간이 생겨서 제니가 덜 불편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거실에서 떡하니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물론 집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 거실에서 지내고 있다는 그 친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남자친구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크리스마스는 밴쿠버에서 보내고 연말에 가게 되었다며 거실에 있던 친구가 상황 설명을 해 주어서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제니는 왜 미리 얘기를 해 주지 않은 걸까.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미와 순이는 제니 방에 짐을 풀어야 했다. 제니는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쓰고 있다고 했는데 순이와 미미의 짐가방까지 포함해서 셋이 방에 들어서니 아무리 크다는 방이어도 꽉 찰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지내기에는 방이 꽤나 넓어 보이기는 했지만.